새해의 소망을 노래한다.

 ‘베레쉬트’는 히브리어 성서 첫 단어이며 태초, 처음, 시작 등을 의미한다. 137억 년 전 빅뱅에 의해 시간과 공간이 생겨나면서 태초가 되었다. 그리고 320만 년 전 어느 날, 인류의 조상 ‘루시(Lucy)’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인간의 문화(文化)가 시작된다. 문화는 인간 활동의 시작이며 끝이라 단언할 수 있다.


사전에서는 문화를 ‘개인이나 집단을 이루고 있는 인간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과정의 산물’로 정의한다. 문화가 없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고, 인간이 없는 문화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문화인’이라고 자칭한다. 일정 교육 과정과 문화적 수준을 갖춘 ‘교양인’이라는 것이다. 


어학사전에서는 교양(敎養)을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문화적 이해와 교양인의 품위를 갖추고 있는지 종종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길거리를 오갈 때 들려오는 욕설들과 한 치 양보 없는 교통질서, 습관적으로 담배꽁초를 무단 투기하고 길바닥에 침을 뱉는 등의 행위는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조석으로 들려오는 살벌한 사건사고, 사회에 횡행하는 차별과 혐오의 말들, 또 몇몇 정치인들의 몰상식한 언행도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한다. 


더군다나 요즘은 무엇 하나 책임을 지려고하는 사람이 없다. 온 국민을 충격과 비통 속에 빠트렸던 10·29 참사에도 진상규명은커녕 잘못했다는 사람이 없다. 국민 73.1%가 정부 책임을 묻고 있지만 그들은 오늘도 응답하지 않는다. 158명의 존귀한 생명들이 별이 된 지 몇 개월이 지나 해를 넘겼음에도 그들은 애먼 소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죄인이 되는 듯하다. 참으로 끔찍한 현실이다. 


일찍이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은 ‘내 탓이오’ 스티커를 자동차 뒷면에 붙여주는 운동을 펼친 적이 있다. 짧은 시간 지속된 운동이었지만 선한 울림으로 기억된다. 이처럼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됐다.’라는 자기 고백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가는 양심이다.


현시대에 이르러서는 공동체적 가치는 약화되고 이웃에 대한 배려나 이웃 간의 윤리는 사라지고 있다. 니체(F. W. Nietzsche, 1844~1900)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제2부 14에 나오는 글에서 교양인이라고 자위(自慰)하는 현재의 인간들을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교양의 속물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교육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학교교육은 인재육성이란 미명 하에 국가체계를 현실화하는 인력 배출에 급급해하고 있고, 공동체도 이에 부응하기 위한 역할에만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이웃 공동체에서도 학교에서도 문화인과 교양인에 대한 교육은 없다. 


최첨단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손 안에 움켜진 스마트 폰 하나에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열광한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로 온갖 걸 해결할 수 있다고 해서 문화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양은 교육 수준과 경제와 과학적 수치로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양은 인간의 품격 즉 사람다움이다. 


문화나 교양은 아주 작은 것에 대한 실천에서부터 드러난다. 뒤 따르는 누군가를 위해 출입문을 잡아 준다든지, 실수로 몸을 부딪쳤을 때 먼저 사과를 하고, 대중교통 이용 시 자리를 양보하는 것. 이렇게 아주 소소한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진 것이 적고 사회적 지위가 낮더라도, 스스로의 존엄을 잃지 않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 그가 곧 문화인이고 교양인이다. 


2023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지만, 한해를 시작하는 1월은 지금까지의 시간들과는 사뭇 다른 의미가 주어진다. 


가족의 건강과 안녕, 그리고 각자의 목표와 근하신년(謹賀新年)의 소망을 담아 만사형통을 비는 특별함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2023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에 희망을 노래한다. 


그 희망의 노래는 문화인과 교양인으로서 서로를 배려하는 애인(愛人)의 마음을 갖는 것, 인간과 만물에 대한 측은지심을 갖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오늘의 나를 딛고 일어섰을 때 가능해질 수 있다.


혁신은 정치, 사회, 경제, 과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격에도 해당된다.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한 작은 노력은 나를 문화적 교양인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사람이 동물과 구별되는 것 중 하나는 인간은 영적 존재라는 것이다. 영적인 존재는 깨어있는 자들의 신성한 의무이며 이는 끊임없는 문화적 소양의 함양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오보영 시인은 <새해의 소망>을 노래한다. “새해에는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 어느 한쪽의 행복이 다른 한편의 불행이 아니라 / 나의 행복이 바로 너의 행복이 되고 / 그의 행복이 곧 너의 행복이 되는 / 그런 축복이 내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났으면 좋겠다” 

포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