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능력을 상실한 닫힌 권력… 공정 사회와 그 적들

 

세상을 잘못 읽으면 정책은 산으로 간다.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현실을 안이하게 보거나 곡해, 오독, 자만하고 세운 대책은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반발에 직면하는 길이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대우조선 공권력 투입 발언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정신의학자 마사 스타우트에 따르면 소시오패스는 상식이나 남의 불행에 공감을 못 하는 양심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때로 무자비한 행동으로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거나 사회를 위험에 빠뜨린다.

 

요즘 우리 사회에 이러한 소시오패스들이 권력과 그 주변에서 활개를 치는 듯하다. 조선업 하청 노동자 파업과 관련한 정부와 공기업 대우조선해양의 대응 방식은 참으로 몰상식할 정도로 소시오패스적이다.

 

5년 전 닥친 세계적 불황기에 이 회사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고통 분담에 동참해 임금을 무려 30%나 스스로 삭감했다. 이제 업황이 흑자로 전환되면서 노동자들은 약속한 대로 임금을 정상화해달라는 요구를 하게 되었고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자 파업을 벌였는데, 현 정부는 무력 진압을 공언했다. 약속을 지켜달라는 요구가 과연 그렇게 무리한 것인가? 대통령이 파업과 관련해 “참을 만큼 참았다”고 말했다는데, 도대체 누가 무엇을 얼마나 참았다는 것인가?

 

임금 협상이 타결됐으나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분명하다. 하청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이 5년 전 1만3천원에서 현재 9500원으로 깎였으니 합의대로 4.5%를 올려준다 한들 주 48시간 노동 기준으로 월 소득은 대략 190만원 남짓이 될 것이다. 이 돈으로 4인 가족이 어찌 살 수 있는가? 공감 제로의 비인도적 처사이다.

 

파업 때문이라며 크게 부풀려진 회사 손실분에 대한 배상 소송과 파업 지도부 처벌이라는 강경 방침도 여전히 철회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법과 원칙, 상식’을 입에 달고 다니지만 이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 이에 반하는 짓 투성이다. 그 대표적 사례는 주가 조작혐의를 받고 있는 대통령 부인이 제대로 된 수사를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건 관련자들이 대부분 구속돼 있는데 이런 봐주기가 국민의 법 감정과 건전한 상식률에 맞는가?

 

대통령 부부의 지인들이 비서실 등에 마구 채용되고 있는 것이 해괴하다. ‘욕설 유투브’를 운영하는 소시오패스의 누나가 홍보수석실에 채용되어 근무했다거나 대통령실 인사 부인이 대통령 해외순방 행사 사전 답사를 한답시고 한 달 전 현지로 갔다가 전용기에 동승해 귀국한 행동 등도 일반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터이다.

 

대통령 최측근인 여당 대표가 지인 아들을 대통령 비서실에 ‘꽂아 넣었다’고 자랑스레 떠든 것은 듣는 이를 아연케 한다. 그는 몇해 전 공기업 간부 채용과 관련해 인사 청탁 혐의로 기소됐다가 혼자만 무죄로 풀려난 전력의 소유자다. 당시 검찰의 봐주기 ‘부실 기소’로 무죄를 받아냈다는 풍문이 파다했다. 문제는 괴이한 행태가 주로 국민을 통합해야 할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 주요 인사들이 여론의 따가운 비판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이들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일반이 지닌 공감 능력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의심마저 든다. 공감 능력과 양심이 결여된 ‘권력형 소시오패스’가 지배하는 나라가 된 것인가?

 

문재인 정부 이래 시대정신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의제가 있다면 공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전 정부 시절 ‘기회는 균등할 것이고, 절차는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 ‘조국 사건’도 결국 공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데 따른 파장이었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도 출범하면서 국정운영 원칙으로 공정과 상식을 내걸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자유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규칙을 지키고 연대와 박애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공정이란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수평을 이루는 천칭과 같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것을 말한다. 공정은 ‘아빠찬스’ ‘엄마찬스’ ‘백’ ‘청탁’을 배격한다. 반칙, 불법, 편법을 거부한다. 사심이 작동하면 공정은 무너진다. 사심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기제가 바로 절차를 따른 것이며 절차가 지켜지지 않으면 공정은 형해화된다.

 

세상이 변했다. 생각도 달라졌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온정주의적 묵인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는 안 되지’라는 원칙 존중이 사회의 규범이 되었다. 높아진 공정의식에 눈높이를 맞추지 않는 한 앞으로의 정책도 헛바퀴를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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