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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칼럼] 지도자는 모든 모순을 융합시켜야 한다



70년의 한국 정치사! 자유민주주의가 도입되고 확장되어 왔다. 지난 경험을 되돌아 볼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도자복이 참으로 없었다. 공공장소에 떳떳한 동상 하나 없는 것이 그렇다. 한국사회는 아직까지 통합이 없었다. 이것은 지도자들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이승만 대통령 시대를 보자. 반공을 내세워 민주주의를 도입 하였지만, 온전한 제도를 이루지 못한 형식적인 민주주의에 그쳤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는 자유민주주의가 경제를 통해 성장 한다는, 경제적 근대화와 민주화의 갈등의 시대였다. 전두환 대통령의 시대는 권위적인 정치 문화 속에서 법보다 권력이 앞선 시대였다. 정치적 민주화를 일궈가는 단계에 접근을 시도 하였지만 정치가 소화불량 상태로 2% 부족한 시대였다

 

정치 지도자의 성공적인 리더십이 자리를 잡으려면 목적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인간은 폴리스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국민을 잘살게 하더라도 지도자들은 국민의 신망을 얻어야 한다. 약속을 철저하게 지켜내야 한다. 즉 행동양식의 가치를 신앙처럼 몸으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의 가치인 토론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국가 경쟁력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과거 정권과의 차별성을 명확히 보여 주어야 한다. 국민들이 과거 보수정권에게 등을 돌렸던 이유 중 하나가 정권의 행동가치의 부재, 그리고 일관성 있는 정치결여, 정책의 수행과정에서 정확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보안우선주의, 비밀주의에 의해서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함으로 최순실이라는 독버섯이 국정농단을 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보수정권에게 등을 돌렸던 것이다. 

 

대통령이 왜 저래, 논어 한 줄만 읽어보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한 페이지만 읽어 보았어도 저러지 않았을 텐데 하며 실망하게 된 것이다. 동양적인 리더십은 철인이나 성현의 경지에 이르러야 리더의 자격이 있다. 유교경전과 노자의 경전을 통하여 정치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성리학적으로 수기(修己) 80%가 되어야 치인(治人)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리더는 때를 알아야 한다. 여기서 때란 물때를 말 하며 밀물과 썰물의 민심의 때를 알려면 자기수양이 필요하다고 강력한 주문을 한다. 

 

우리는 리더의 자격요건을 배울 때는 서구적으로 배웠는데 사람을 바라볼 때는 동양적 사고로 바라본다. 예컨대 인사청문회에서 공직을 담당하는 자의 능력의 검증보다 도덕과 윤리적 검증, 사이에서의 갈등이 그렇지 않은가? 동양적 리더십의 유형을 보면 왕도(王道)의 리더십, 패도(覇道)의 리더십, 무도의 리더십, 위임형 리더십, 수위형 리더십, 솔선형 리더십 등으로 나뉘는데, 왕도의 리더십은 덕()으로서 인을 행하는 것, 리더의 인격이나 목표설정에 감복하여 마음으로 스스로 따르게 하는 리더십이라 한다. 패도의 리더십은 외형적으로는 인()으로 다스리지만 힘으로 다루는 것이다. 무도의 리더십은 자기 기분에 따라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리더십으로 목표가 없다. 중국을 천하통일 했던 진시황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겠다. 

 

위임형 리더십은 모든 결정권을 최측근에게 위임하는 형이다. 유방과 유비, 이성계의 리더십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수위형 리더십은 백성들의 의견을 많이 들으며 측근과 참모들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용의주도하게 의사결정을 내리는 형이다. 당태종과 세종대왕, 조조의 리더십이라 하겠다. 솔선형 리더십은 나를 따르라, 현장을 자신이 직접지휘 하는 형이다. 장군의 리더십으로 이순신, 곽재우의 리더십이 여기에 속한다고 보겠다. 

 

리더십의 성립과정을 보면 그 시대의 가치에 따라 차이가 있다. 리더는 엄격하면서도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 리더의 최고의 조건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게 없으면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자기성찰과 백성들의 목소리를 잘 경청하는 것이 리더의 첫걸음인데 이를 거부한 수양제나 인조, 선조는 실패한 리더십의 소유자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지도자의 리더십은 인재를 식별할 줄 아는 능력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용인지상(用人至上)! 백성은 하늘이고 인재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요 동량이기 때문에 그렇다. ‘백락의 명마론에 의하면 인재는 천리마를 고르듯 하라고 주문한다. 

 

어떤 사람이 말 등에 소금을 가득 싣고 가파른 태행산을 오르고 있었다. 말이 무릎이 꺾이도록 언덕을 오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좀처럼 오를 수 없었다. 온몸이 땀에 젖었다. 돌아가려 해도 길이 너무 길었다. 그때 지나가던 백락이 이 말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눈물을 흘리며 자기 옷을 벗어 말에게 덮어 주었다. 그러자 말은 정신을 차리며 머리를 들어 높은 소리로 울부짖었는데 그 소리가 하늘까지 울렸다. 말은 자기를 알아주는 지기(知己)’를 만나자 천리마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이 천리마가 지기를 만나지 못했다면 소금 따위나 지고 나르는 운명에서 벗어 날 수 없었을 것이다. 리더는 열 명의 인재를 얻는 것보다 인재를 식별하고 기용할 줄 아는 사람 하나를 얻는 것이 낫다는 말은 백락 천리마의 관계를 빌어 이해해야 할 듯 싶다. 

 

리더는 박애정신, 사랑이 있어야 한다. 고정관념의 틀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야 한다. 세계 어린이들에게 해를 그리라 하면 한국과 일본은 빨간색으로 그리고 서양 어린이들은 노랗게 그리며 중국 어린이들은 하얗게 그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또한 발명왕 에디슨이 측음기를 발명하자 에디슨의 형은 광장에 측음기를 켜고 시험을 해 보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려나와 신기해하고 개들까지도 나와서 꼬리를 흔들며 즐거워했다. 이 소식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자, 각 나라에서는 측음기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유일하게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 측음기를 단 한대도 사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도망을 다니다가 개가 짖어서 붙잡혔다고 해서 개를 악마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각 나라의 문화(culture)의 차이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문화가 다르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인다. 리더십 역시 동양에서는 도덕과 윤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서양에서는 리더십보다는 제도, 시스템에 의해 국가운영이 되고 있다. 

 

 

종교적인 해석으로 오해하지 말자. 동양이든 서양이든 지도자는 십자가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십자가의 형상을 그려보라 수직과 수평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그곳에는 이 세상의 모든 모순이 그려져 있고, 생명이 탄생하고 죽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은가? 리더는 이러한 모순을 융합 시켜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은 사람이며,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리더만이 지도자로 이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으리라.    

 

<현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자문위원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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