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 동지이공의 유래

 

 


의로운 노부부의 은덕을 기리고저 올려봅니다.

비 건립일자

1939년 4월 15일(소화 14년 4월 15일)

 

구한말과 일제시대 곡성읍 장선마을에 살면서 슬하에 자식도 없이 李氏와 부인 尹氏가 평생 동안 행상을 하여 모은 전 재산(전답100두락)을 당시 곡성면사무소에 기증하자 노부부의 은덕을 기리기 위하여

 

1950년까지는 면에서 임대료를 받아 그 돈으로 추모비도 세우고 빈민구제와 매년 성대히 두분의 제사를 모셔 왔었는데 1950년대 최초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면에서 관리하던 재산이 모두 군으로 이관된 후 부터는 제사경비가 부족하여 명맥만 유지하였다 함.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그나마 예산이 동결되자 곡성읍 직원들의 봉급에서 조금씩 각출하여 제사 지내오다가 1980년도에는 제사가 중단 상태에 있었는데 뜻있는 곡성읍민들이 두 노부부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여론이 있어

 

1998년도 당시 김용선 읍장과 마을 이장단을 비롯한 주민 20여분의 고증을 종합 李公 비 건립날을 제삿날로 정하자고 합의하여 1998년 4월 15일 제사를 다시 부활한 이후부터는 매년 읍민 다수를 초청하여 제사를 모셔 동지 이공의 은덕을 영구히 추모하게 되었음.

 

동지(同知)라는 칭호는 이름도 아니고 호도 아님. 제단에 각인되어 있는 내용과 같이 1930년대 일제의 어려운 시기에 전 재산을 기증한 고귀한 정신과 은덕을 기리기 위하여 그 당시 곡성면민의 이름으로 추서한 조선시대 벼슬 품계 명칭일 것으로 추정되며,

동지(同知)라는 벼슬 품계는 종2품 상당으로 현재 정부 직제상 차관보급에 해당하여 정부인(貞夫人) 윤(尹)씨 역시 품계상 동지(同知) 품계에 맞게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서된 것으로 사료됨.

 

안타깝게도 곡성면 서무계에서 보관했다던 재산목록은 해방과 6.25사변 등 격동의 세월을 겪으면서 소실 또는 분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음. [전남투데이 / 장형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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