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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초롱 박철홍의 "역사는 흐른다'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258


ㅡ 10.26부터 광주항쟁까지 ㅡ 4
(김재규 측의 어이없이 허술한 사후조치)
오래 전 어느 가전제품을 선전할 때"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 합니다 "라는 광고 문안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역사 속에도 이런 일은 종종 있다."한 순간의 선택이 역사를 바꿉니다!"

오늘 주제이다.
정말 한 순간 선택이 우리 역사 물줄기를 크게 바꿔버린 일이 일어 났다. 김재규가 국가원수 박정희를 궁정동 안가에서 시해한 직후 일이다.

김재규는 그 안가 다른 곳에 우리나라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와 저녁 약속을 잡아 놨다. 김재규가 10.26거사를 결정하고 급하게 잡은 저녁 약속 이었다.

김재규는 박정희를 시해하고 그 즉시 밖으로 뛰쳐 나와 정승화와 저녁 약속을 잡아 놓은 장소로 달려 갔다. 그리고 정승화를 급하게 불러내어 박흥주 대령과 함께 자기 차에 태우고 출발했다.

그런데 이 날 김재규 판단은 개인적으로 일생일대 최악의 실책을 저지른다. 그 판단 실책은 국가적으로도 역사 큰 물줄기를 크게 바꿔 버렸다.

김재규 일생일대 최악 판단 실책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김재규 차에 탄 정승화 총장이 김재규에게 무슨일이냐고 묻자 김재규는 엄지 손가락을 접으면서 박정희가 죽었다는 표현을 하자 정승화는 깜짝 놀라며 '지금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이에 박흥주대령이 '중정으로 가고 있습니다' 고 대답한다. 정승화는 '왜 중정으로 가냐며 육본으로 가자' 고 말한다.
박흥주는 김재규에게 다시 묻는다."부장님! 중정으로 갈까요? 육본으로 갈까요?"  우리나라 역사를 크게 바꿔버리는 정말 역사적 질문이다. 이에 조금 망설이던 김재규는 정승화 주장대로  '육본으로 가자' 고 한다. 또 다른 말도 전해진다.  김재규가 결정을 못하고 박흥주에게 '어디로 가면 좋겠냐' 고 다시 묻자 박흥주가 김재규에게 '육본으로 가죠'  했다는 것이다. 하여튼 어느 말이 사실이라해도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은 김재규나 박흥주가 육본을 선택한 점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다.

우선은 국가원수를 시해하는 그런 큰 일을 같이 한 가장 측근하고 어디로 가서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해서도 전혀 상의가 없이 무조건 차에 올라 탔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다,  차 타기전에 둘이 상의하에 이미 정해져 있었야 했다.

또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김재규가 육참총장이랑 차에 타면서 박선호대령 등 안가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지시도 없이 그냥 떠났다는 것이다.

김재규는 박정희가 총에 맞은 상황에 동석하여 직접 목격하고, 자기 목숨도 어떻게 될까 봐 어쩔줄 모르고 당황하는 비서실장 김계원에게만 '형님 뒷처리를 부탁한다'는 말만 남겼다. 사전에 김계원과는 뒷처리에 대해서 어떤 말도 나눈바 없이 말이다.

영화 '그때 그사람들' 들을 보면 박선호대령 역을 맡은 한석규가 김재규가 떠난 뒤 어쩔 줄 모르고 밤새 헤메이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사실은 전문가가 아닌 나같은 일반 개인이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보면 일반 범좌자가 누군가를 죽이려고 할 때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사후처리도 증거를 없앴는 등 철저하게 하는데 말이다.

김재규는 사건을 저지르고 나서라도 박흥주나 박선호를 불러 단 몇 분이라도 사후지침을 내리고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서 상의했어야 했다. 사전에는 비밀이 누설될까 봐 그냥 '나를 따르라' 는 명령만 내렸다고 해도 사후처리는 정확하게 상의하여 세밀하게 지침을 내렸어야 했다.

그럴 시간도 충분했다.

그런데 김재규는 박정희를 시해하고 맨발로 헐레벌떡 뛰어나와 급히 물을 찾아 마시면서 정승화와 박흥주만 자기 차에 태우고 현장에서 아무런 지시도 없이 떠나 버린 것이다.

김재규는 직접 박정희를 쏜 극도의 흥분으로 패닉상태에 빠져 인간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 것은 조금 이해는 간다.

아무리 그래도 김재규 주장처럼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국가원수를 시해할 생각이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면 좀 더 냉정하고 냉혹하게 정신을 차리고 사후처리를 했어야 했다.

김재규의 오래 전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거사를 치루었다는 말이 가장 의심스러운 상황이 이 부분이다. 그런 대의명분으로 국가원수를 시해한 일치고는 사후처리가 어이없을 정도로 너무 허술하기 때문이다.

합수부 수사발표대로 10.26사건이 과대망상적 영웅심에 사로잡힌 돌아이의 우발적 사건이란 것에 심증이 더 가는 김재규 측의 정말 어이없는 사후처리였다.

물론 10.26  거사 일은 사전에 계획되어 있지는 않은 것은 확실하다. 김재규도 그 날 당일 오후 4시쯤에야 연회가 있다는 것을 연락 받았기 때문이다.

김재규는 차지철로 부터 급한 연락을 받고 곧 바로 거사 준비는 한다. 곧 바로 정승화와 저녁 약속을 잡는다. 이러한 점은 김재규 말대로 오래 전부터 박정희를 제거하겠다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다는 의미이다. 10.26  그 날로 잡은 것은 오전 삽교천 행사 끝난 뒤에 차지철이 김재규가 대통령 전용헬기에 동행하지 못 하도록 막아 차지철에 엄청난 분노가 쌓인 것이 그 날로 잡은 결정적인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럼 그 순간에 김재규가 육본이 아닌 중정으로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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