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한국 고흥에서 만난 동흥시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지난 월요일 우리 고흥 교류단 학생들은 중국 동흥시를 다녀왔다. 인천 공항을 가고,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 도착할 때까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레는 마음에 이동 시간이 더욱 길게만 느껴졌다. 난닝 호텔에서 머무를 때에는 다음날 친구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쉽게 잠들기 어려웠다. 난닝에서도 3시간정도 버스를 타야 동흥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친구들이 있는 학교로 갔다. 우리 친구들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과 선생님, 학부모님들이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화려하고 스케일이 큰 환영에 우리의 준비가 약간 부족한 느낌을 받아 미안했다. 그곳에서 나와 쉔요(나의 파트너)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서로를 끌어안았다. 만나기 전까지 하고 싶었던 말들은 잊은 채 서로 보고 싶었다는 말만 계속 했는데 그때의 상황과 서로의 표정이 우리의 격한 감정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눈물겨운 상봉을 마치고 서로를 위해 준비한 공연을 보았다. 서로를 위해 열심히 준비한 결과를 보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공연이 끝난 후 집으로 가 간단히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은 뒤 쇼핑을 갔다 왔다.
7층짜리 대저택을 소유한 쉔요는 7층을 쓰라고 나에게 방을 내줬다. 7층에는 화장실도 있고 세탁기도 있어서 중국에 있는 동안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나를 위해 최대한의 편안함을 제공해준 쉔요 가족에게 정말 고맙다. 둘째 날 아침은 쌀국수를 먹었다. 돼지 살코기가 들어간 쌀국수였는데 베트남과 맞닿아 있어 그런지 쌀국수가 정말 맛있었다. 둘째 날에는 작은 박물관, 베트남, 초등학교 과학실, 서예와 가야금 배우는 곳에 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소수민족 박물관과 학교였다. 중국의 50여개의 소수민족중 하나가 동흥시에 사는데 그 민족이 연주하는 전통악기가 인상 깊게 남았다.
한 개의 현으로 된 악기였는데 단지 어떻게 튕기냐에 따라 음의 높낮이가 달라져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찾아내려고 했는데 알아내기 어려웠다. 소리도 예쁘고 정말 신기한 악기였다. 일정이 끝난 후 우리들은 다 같이 게임방에 갔다. 제일 먼저 한 게임은 농구 게임이였다. 파트너, 중국인, 한국인 상관없이 무작위로 팀을 선정해 게임을 했다. 결과적으론 상대팀이 이겼지만 결과는 뒷전으로 한명한명 할 때마다 같이 응원하고 아쉬워하며 소리지르고 놀았는데 너무 재밌었다. 대륙의 아이들도 우리와 별 다를 것 없이 이렇게 함께 즐겨보니 역시 세계 청소년들의 문화는 다 비슷한 것 같았다. 마지막 날에는 레크레이션과 비슷한 시간을 가졌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시간이 우리들의 관계를 잘 마무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함께 게임도 하고 만들기도 하며 조금 서먹한 친구들까지도 다 친해질 수 있어 너무 좋은 시간이였다.
일정 후엔 전부(민서네 빼고) 이하오(단아 파트너)네 엄마 빵집으로 모였다. 쉔요의 생일이기도 하고 마지막 추억을 쌓기 위해 이하오 엄마의 재능 기부로 케이크를 만들기로 한 것 이다. 자기 파트너와 단 둘이 하나의 케이크를 만들면서 우정이 더 돈독해지고 생크림을 묻히면서 놀면서 행복을 느끼고 쉔요의 생일을 함께 축하해 주면서 더욱 하나가 되었다. 떠나가는 날 아침은 호텔에서 먹었다. 너무 근사해서 마지막 조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떠날 때 울어버리면 영영 못 보는 사람이 되는 거 같아 전날 자기 전 나는 울지 않기로 스스로 맹새했다.
그런데 아침을 먹고 헤어질 때 쉔요의 엄마가 눈물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에 타기 몇 분전 굳건할 거 같은 쉔요도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버스에 탔을 때 함께 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미안했던 것, 아쉬웠던 것, 고마웠던 것 등 감정을 전부 전달해 주지 못한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계속 연락하고 다음번에 꼭 다시 만날 것이다.
쉔요와 ‘우리’라는 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고흥평생학습사업소 강춘자 과장님, 정은영, 정용택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