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정에도, 태평성대에도 필수불가결한 언론은 시대가 변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표현방법으로 여론을 조성해 왔지만 현재처럼 광범위하고 정체성이 불분명해지는 시기는 없었다.
조선시대 고을마다 붙이는 방이나 광복 이후 신문이 정보제공의 전부였다면 지금은 포털사이트나 SNS가 마치 여론조성의 대세로 비춰지는 형국이니 제도권 안에서 보도내용에 책임이 따르는 언론의 설자리가 점차 좁아드는 게 현실이다.
한국 언론 중 메이저를 제외한 중소 언론사들의 열악한 환경은 새해 들어 더 어두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인터넷매체나 지역 주간지, 지방일간지는 물론 계간, 월간, 기타 전문지까지 수 천개의 매체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급변하는 문명의 발달을 따라잡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일단 독자층, 절대 다수의 군중관심에서 밀려나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뉴스는 그 가치를 떠나 눈에서 멀어지고 선정적 제목이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관심거리라도 발생해야 겨우 클릭당하는(?)게 현 시점에 처한 언론의 현주소다.
매체가 생산자라면 시청률이나 구독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국민은 소비자역할에 해당된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야하고 그러다보면 뉴스의 가치보다는 흥미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깊이 들어가 보면 건전한 여론조성의 책임은 언론에 있지만 언론발전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결국 독자이거나 뉴스의 가치를 존중하고 사회발전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 주는 군중들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한국이 지리적으로 잦은 외세에 시달리고 파벌위주의 당리당략이 그칠 날이 없었던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선진문화의 도입이 검증이나 여과장치 없이 무분별하게 자리하면서 도덕성실종, 이기주의 팽배, 황금만능주의, 쾌락일변도의 급변화가 가져오는 폐단이 문제다.
기레기라 하기 전에 기레기를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국민도 권력도 아니라 시대적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2018년 언론자유지수가 180개국 중 1년 만에 20위 상승하여 63위에서 43위로 올랐다.
2016년 70위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던데 비하면 상당히 긍정적인 청신호다. 일본은 67위, 중국은 176위 였었는데 언론탄압이 심한 중국까지 가서 한국 언론인들이 얻어맞았다는 점이 어이없는 점이기도 하다.
노르웨이는 2년 연속 언론자유지수 1위를 기록했으며 스웨덴 2위, 네덜란드 3위 등 모두가 민주주의 척도인 민주·복지·언론 등의 지표 수준이 높은 나라들이다.
이제 한국이라고 최우수 반열에 서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민주 정부, 남북한이 하나 되고 미, 중, 일, 러가 낚시질하는 조선이 아닌 지구촌의 종주국으로 거듭난다면 언론뿐만 아니라 개인적 자질이 가장 우수한 민족임이 증명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지역 지방 언론들이 오랜 과거의 정황들을 참작할 때 선뜻 제 소리낼 개미들의 합창이 어려운 시절이다. 눈치 보지 않고 할 소리 해대면 얼마나 살아남을지 장담키 어려웠던 시간들이다.
아닌 말로 권력이 언론사, 특히 중소 언론사 하나 없애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실제 박근혜 정부시절 5인 미만 인터넷언론사 한방에 날려버리겠다고 시도했다가 현대판 분서갱유란 소리까지 들었고 결국 미리 알아서 폐간한 언론사가 한두 곳인가.
진정 미래지향적인 대한민국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풀뿌리 언론들의 목소리가 존중받고 각기 다른 뉴스가 국민들에게 제공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언론자유는 곧 민주주의 수준과 직결되며 이는 다시 행복지수 또는 부패지수 등과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일수록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지만 그에 앞서 언론인들의 의식과 신뢰 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전제도 필수적이다.
대기업이 던져주는 광고비에 꼬리를 내리고 행정기관이 선심 쓰듯 배정해주는 행정 예고비에 머리 숙여 보도 자료만 보내야하는 현실이 개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