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가정의 달을 맞아.할머님의 손맛을 그리며".

  • 등록 2019.05.06 06: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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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유수와 같아 엊그제 어린아이 같았던 나는 올해 만 70살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할머님 집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나의 초등학교시절까지 건강히 키워주신 할머님이 돌아가신지도 벌써 40년이 되었습니다. 할머님(李一孝, 1907-1980) 돌아가신 후 바로 미국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취득 후 귀국하여 대한적십자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50여 개국 이상의 나라를 해외출장 다니면서도 건강상 큰 문제없이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지하에 계시지만 할머님의 지극한 손자사랑은 대한적십자사에 재직중이던 16년전 나의 꿈속에 나오셔서 병원에 가보라는 계시를 주시어 암을 발견하였습니다. 암수술을 받은 후 인공요루를 착용한 장애4급이 되었지만 대한적십자사에서 정년까지 근무한 후 퇴직한 것을 곰곰이 생각하니 모든게 어릴적 할머님께서 정성어린 극진한 보살핌으로 손자인 나를 건강하게 키워주신 덕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정년 퇴직 후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수많은 강연을 하면서 많은 나라를 여행한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면 청중들 중 어떤 분은 내가 여행한 수많은 나라 중 어느 나라 음식이 제일 맛있었느냐고 물어 볼 때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러한 질문을 하신 분은 프랑스 요리나 중국 요리라는 대답이 나에게서 나오리라 기대했겠지요.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요리 중 가장 맛있는 요리는 내가 어릴 적 할머님께서 정성스러운 마음과 할머님만의 손맛으로 만드신 뚝배기에 끓인 시래기 된장국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즉 할머니께서 투박한 뚝배기에 무우의 잎과 줄기를 말린 시래기를 넣고 정성스럽게 끓여주신 시래기 된장국이 제일 맛있다고 말해 주곤 했답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50년대는 6.25전쟁이 끝난

 

 

 

후 나라가 매우 가난한 시대였고 할머니집이 있는 농촌은 밭에서 손수 가꾼 농작물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때였습니다.

 

   할머님이 직접 재배하신 콩으로 손수 만드신 된장을 풀어 넣고 밭에서 직접 기르시고 수확한 무우의 잎과 줄기를 말린 시래기와 호박과 감자며 파를 뚝배기에 썰어 넣어 끓인 시래기 된장국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먹어본 수많은 종류의 진수성찬과는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니 뚝배기에 넣은 시래기 된장국을 끓이시면서 할머니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어린손자가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음식이기에 할머님의 온갖 정성스런 마음과 손맛이 시래기 된장국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에 녹아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나이가 먹을수록 그리워 지는 게 할머님이 직접 끓여주신 뚝배기 시래기 된장국의 할머니의 손맛이지만 살아계실 때 한 번도 할머님의 은혜와 정성에 보답을 드린 적이 없었으니 이렇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에는 더욱 더 할머님이 그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할머님의 손맛은 식재료가 부족하고 반찬이 적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름에는 앞마당 우물에서 떠온 시원한 물에 쌀이 조금 섞인 보리밥을 말아, 텃밭에서 따온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어도 보리밥 한그릇을 금방 비울수 있었습니다. 요즘같이 풍요로운 조미료도 없던 시절이라 파를 잘게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섞은 후 수확한 참깨를 짜서 만드신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린 간장에 밥을 비벼 먹거나, 텃밭에서 따온 상추에 된장을 얹어 싸먹은 상추쌈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거기에 텃밭에서 따온 들깻잎이나, 고추잎과 고추, 오이 등을 된장밑에 넣어 오랫동안 절인 후 나온 각종 장아찌들은 사철 밥상에서 떠나지 않은 밑반찬이었습니다. 또한 앞마당에서 직접 모이를 주시면서 키운 암탉이 난 달걀을 깨어 파와 참기름을 섞어 뚝배기에 찐 달걀찜이나, 생달걀을 깨어 막 해낸 뜨거운 밥에 넣어 간장과 참기름을 섞어 밥을 비벼 주시던 그 맛은 지금도 어느 요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할머님의 손맛이었습니다. 특히 여름이면 앞마당에서 손수 키우신 닭을 잡아 장작불에 푹 고아 삼계탕을 해주시면 무더운 여름에도 힘이 저절로 난 기억이 납니다. 특히 올해 같이 푹푹찌는 더운 여름철에는 더욱 더 할머님의 삼계탕의 맛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지금은 비록 장애인이 되었지만 그러한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손맛과 보살핌 때문에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게 직접 기르고 수확한 곡식과 채소 등으로 만든 반찬과 음식들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할머님의 손맛이 그리운 것은 반찬과 음식에 쓰인 재료 하나 하나에 할머님의 마음과 정성이 스며들은 손맛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어떤 진수성찬과도 바꿀 수 없는 음식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을 소중한 사람이 사라져야 그 소중한 사람의 존재 가치를 늦게나마 아는 것 같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자기의 곁을 떠난 후 후회하기 전에 살아 계실 적에 관심을 갖고 효(孝)를 실천하여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이제 어느덧 70살이 되니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에게 가장 소중한 할머니는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시니 말입니다....

 

   외면만을 중시하며, 개인의 안일에만 눈이 멀어 나의 이성과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자기를 가장 사랑해준 할머니에 대한 은혜를 망각하며 삶의 조화와 균형을 잃고 살았기에 지나온 세월은 과오와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의 지나온 인생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나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주기에 나는 본래 제목은 “불효자는 웁니다”란 노래의 ‘불효자’를 ‘불효손자’로 바꾸어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할머님이 돌아가신 후 부터입니다. 이 노래는 할머님의 손자에 대한 조건없는 무한한 사랑과 가족애와 할머님에 대한 불효의 생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일이 안 풀리면 자신의 판단부족과 노력이 모자람을 생각지 않고 주위환경에 대한 원망적인 생각을 품으며 살다가 할머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뉘우치고 한탄하는 손자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기 때문입니다. 원래 가사에 나오는 ‘어머님’을 ‘할머님’으로 바꾸어 불러봅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할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할머니여 불초한 이 손자는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세월은 유수같다고 했습니다만

아무런 기약도 없이 할머님 곁을 떠났던

그 가슴아픈 추억이 어제인 것처럼

눈에 선합니다만 그것이 정녕 그것이 정녕

삼십년 전인가요 아니 사십년 전인가요-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믿을 이 손자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할머니를 끝끝내 못뵈옵고

산소에 어푸러져 한없이 웁니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자기를 가장 사랑해 주는 분은 기다려 주지 않기에, 자기를 가장 사랑해 주는 분이 살아 계실 때 효(孝)를 행하여야 돌아가신 후에도 후회가 없다는 걸 일깨워 주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나 자신이 늦게 결혼하여 자식을 키우면서, 나이가 들어가며 인생의 여러 풍상과 고난을 겪은 후에야 할머님에 대한 불효를 뉘우치게 하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이 노래를 혼자 흥얼거리며 돌아가신 할머님을 생각하니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며 남은 여생은 더욱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손자인 나에게 무한한 꿈과 희망을 가지셨던 할머님은 가셨지만, 할머님께서 살아 생전에 손자와 함께 살아가시고 싶어했던 세상을 이제 내가 할머니 몫까지 살아가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안계신 할머님을 기억하며 사죄하는 마음으로 외형보다는 내면에, 보람있는 생활에 집중하며 묵묵히 나머지 삶을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고 매일매일 다짐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할머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아니 그보다 더 큰 후회스러운 마음으로 효(孝)를 모르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우리 주위에 있으며,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가장 소중한 분께 조그만 관심과 정성를 기울이는 것이 행복이라고 알려 주고자 합니다. 그래서 “효와 행복연구소”를 만들어 여러 사람들에게 행복은 멀리 있는게 아니라 효를 행하면 성공하고 행복해 진다는 강의를 하면서 칼럼를 쓰고 있으며,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효를 실천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효경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갈수록 무뎌지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가다듬으면서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깊은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맑은 공기와 따스한 햇살의 소중함, 매일매일 살아 있다는 고마움,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서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아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의 깊은 내면의 소리에 관심을 갖고 나의 몸과 마음이 원하는 바를 찾아보는 삶을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당신은 지금 효(孝)를 행할 사람이 주위에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효(孝)를 행하고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며 자신만의 지혜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안내역할을 해주는 한알의 밀알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이게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孝(HYO=Humanity between/of Young and Old)의 정신이고 너와 내가 서로 존중하며 함께 잘 살아 보자는 人道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효와 행복연구소장

                                                                        교육학박사 고영기

 

윤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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