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달맞이 공원 조성과 함께 영암읍성(邑城)을 보존하자.

   

            황 용 주

 

 영암군은 지난 9월21일 낭산실에서 영암 달맞이 공원 조성 사업 기본 및 실시설계(안)에 대한 보고회를 개최하였다.

 

 전동평 군수는 “지금까지 활용하지 못한 영암읍성의 관광자원개발 사업을 통하여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에게 휴양과 문화시설로 되돌려 줄 수 있도록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성(城)은 유사 이래 930여 차례 외침을 당하면서도 나라를 지켜 낼 수 있었던 방어벽이다. 영암읍성은 조선시대 지방의 수령이 지역을 관할하던 곳으로 문화와 행정의 중심지였다. 읍성을 축성한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왜구들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14세기 고려 말에 처음 축조하여 1433년(세종16)에 규모를 확장하고 1452년 무렵에 완공하여 영암읍성의 전체적인 틀을 갖추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읍성은 도광(道光)12년 임진년(壬辰年) 영암군지(靈巖郡誌)에 의하면 읍성석축 둘레는 4천3백60보, 높이는 15척, 여첩 1천25, 성문(城門)은 동문, 서문, 남문 3곳에 있고 영암읍, 서남리, 남풍리, 동무리, 역리에 걸쳐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광은 청나라 도광제의 연호이며 조선 순조 32년 1832년)이다.

 

이러한 영암읍성에 대하여 이번이 두 번째 글이다. 지난 2001년 12월 첫 번째 글을 썼다. 그에 대한 영암군은 옛 성터 영암읍성을 후손들의 산교육장으로 활용, 지속적인 복원사업을 펼친다고 밝혔다.

 

 또한 군은 그동안 훼손된채 방치되고 있던 영암읍성을 복원 완료되는 등 문화재 보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아직까지 남아있던 성터중 그 흔적이 가장 장 보존돼 있는 영암읍 향교 뒤편 약 40m 구간의 옛 성터를 군비 6천400만원을 투입 성곽을 전통기법을 이용 원형대로 복원했다고 답변을 보았다. 그리고 19년의 세월이 흘렀다. 때 늦은 감이 있으나 이제라도 영암 달맞이 공원을 조성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영암군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기여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러나 영암읍성은 세월이 지나갈수록 영암읍민으로 부터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성벽의 전체가 훼손되어 가고 있다. 또한 영암읍성 가까운 주택은 조망권이 가로 막히고 주변 경관이 차단되어 환경이 더럽고 지저분하다. 특히 도시개발에 밀려 점점 허물어져가는 읍성을 보면서 왜구들의 침략으로 부터 지역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보장처 역할을 하였던 읍성의 자취마저 볼 수 없게 될 것 같아 안타깝다.

 

특히 영암 무등아파트 뒤편, 최근에 신축한 우진레디앙스 사이에 폐가와 대나무, 아카시아나무 등 잡목으로 우거진 곳이 있다. 그곳에는 2m정도 크기의 돌로 쌓은 석축이 원형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이곳을 영암달맞이 공원 조성사업과 연계하여 정비 보존한다면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금상첨화일 것 같다. 이에 영암읍민은 물론 영암군, 문화재관리 기관, 영암 읍성보존회와 함께 읍성 복원 정비하는데 행동하고 실천하는 양식이 필요할 때라 생각한다.

 

1872년 영암군 지도(서울대 규장각 소장)에 의하면 영암읍성 동문밖에 열무정이 있는데 열무정은 사포계문서와 함께 전남 문화재 160호로 지정되었으나 영암읍성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 다시한번 강조한다면 영암 달맞이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현존하는 읍성 석축을 이번 기회에 정비·보존해야 한다. 그리고 실내체육관 주변공간을 정비, 관광객들이 머무르는 주차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19년의 세월이 흘렀다. 영암군은 도시 재생사업으로 살기 좋은 쾌적한 한경을 조성하는 약속을 지킬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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