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음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2022년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연말을 맞아 여러 방송매체들은 각종 음악 프로그램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방영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트로트 장르가 최고의 주가를 올렸으며, 이를 반영하듯 ‘THE 트롯SHOW’, ‘우리들의 트로트’, ‘트롯 챔피언’, ‘쇼10’ 등의 방송 프로그램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트로트 스타 가수들이 줄줄이 탄생할 정도로 이제는 대중음악의 정준(定準)이 되고 있는 듯하다. 제2의 트로트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동남아를 비롯해 세계각지에서 K-트로트라는 이름으로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참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이 대중가요는 지금의 트로트라는 명칭을 얻기까지 왜색 논란을 비롯하여 저급문화로 폄하되기도 했었고, 다른 음악 장르에 밀려 존재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지만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늘의 튼튼하고 빛나는 영역을 구축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트로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선정적이고 경박한 가사를 비롯한 몇몇 모습에서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꼭 부르디외(P. Bourdieu, 1930~2002)의 관점인 ‘구별짓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문화에 노출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미치는 부정적 요인을 언급하고자 함이다.


대중문화(大衆文化)를 사전에서는 ‘대중매체를 기반으로 한 문화를 지칭하며, 혹은 대중이 중심이 되는 문화’라고 정의한다. 즉 대중의 일상생활에서 소비되는 문화가 대중문화라는 것이다. 여기서 대중은 수많은 사람들의 무리를 말하며 남녀노소, 어린이를 포함한 일반 다수를 지칭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대중의 영역에 포함된 지적,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트로트 방송의 일부 잘못된 경향성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지자체에서 개최하고 있는 어린이 트로트 경연대회나 단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초등학생들을 출연시키는 트로트 방송프로그램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위 프로그램들은 어린이들의 노래에 순위를 매기고 상금과 경품 시상을 하면서 어린이들을 무한경쟁에 노출 시키고 있다.

 

음악이 주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며 노래해야 할 시기에 재능을 상호 비교하여 누군가는 우승하고 누군가는 탈락한다. 이를 보는 시청자 또한 아무런 도덕적 판단 없이 경연대회 출연자를 응원하고, 자신이 응원하는 출연자가 우승하기를 바라며, 아직은 어린 탈락자의 심리적 상처를 외면한다. 


출연자도 시청자도 자연스럽게 경쟁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아니어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학교나 학원에서 얼마나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그들만의 생각과 언어로 세상을 보아야 할 아름다운 동심의 시기에 성인들이 노래하는 사랑, 이별, 인생을 갖가지 율동과 함께 열창을 한다. ‘사랑의 밧줄’, ‘오빠 한번 믿어봐’, ‘나는 여자라서 행복해요’, ‘애인이 되어줄게요’등의 제목과 ‘오늘 밤에 아무도 모르게 너랑 둘이서 둘이서 사랑을 할 거야’, 같은 노랫말은 초등학생들이 불러야 할 노래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런 이유로 트로트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 국민청원까지 있었다. 


동심은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한 소중한 씨앗이며, 내일을 위해 간직해야할 예쁜 그릇이다. 그 그릇에 정제되지 않은 성인가요를 채울 수는 없다. 물론 유행을 따르는 대중문화의 속성과 트로트의 인기로 인해 어린이가 더러 트로트를 부르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과 공공기관에서 아무 여과 없이 집객과 성과에 급급하여 어린이들을 상품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트로트 장르의 옳고 그름을 얘기하거나, 위의 노래 가사나 제목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묘사와 성차별적인 노랫말 등이 어린이들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교육적으로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면들이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K-트로트 장르에 누가 될까 걱정이다.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 1788~1869)는 “음악은 생명에 대한 가장 깊이 있는 생각을 표현하는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심오한 분야이다”라고 했다. 


음악은 음(音) 하나하나에 우주의 심오함을 표현하고 있다. 음악은 유희적 도구가 아닌 신의 영적 선물이다. 


그래서 창작의 숙고를 거친 좋은 음악에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모든 이들에게 심미적인 안녕을 기하는 힘이 내재되어 있다. 특히 예술적 가치가 있는 음악은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정서적 영향을 미치고 창의력과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울 뿐만 아니라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의미를 더하게 된다. 


내일의 주역이 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건강한 음악을 기반으로 올곧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은 어른들의 책무이다. 진정한 예술의 가치는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때 인정받을 수 있다.

포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