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방치로 무너지는 공공의

충격적인 지역 의료격차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3.6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에 이은 2위다. 


인구 10만 명당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사망한 비율은 2020년 기준 전국 평균 43.8명으로, OECD에서도 낮은 편이다. 문제는 평균에 가려진 함정이다. 16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낸 ‘전국 시·도별 의료공백 실태 및 개선방안’은 지역 격차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살릴 수 있는 인명이 손상되고 있는 데다, 지역별 편차가 컸다.


대한민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5명(2019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3.6명의 70% 수준이다. 이에 역대 정부는 꾸준히 의대 정원 확대를 시도해왔지만, 번번이 의료계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그동안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로 대표되는 필수의료 과목에서 의사가 점점 부족해졌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정원은 207명이지만 충원율은 15.9%(33명)에 그쳤다.


지난 정부는 “의대 정원을 10년간 400명씩, 총 4000명 늘리겠다”라고 발표했다가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적이 있다. 당시 전공의들은 파업에 돌입했고, 의대생들은 그해 국가고시 응시를 거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의료 마비 우려가 커지자 결국 정부는 백기를 들고 계획을 철회했다. 관건은 정부가 의료계의 반대를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달렸다. 


한국 의료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자랑스럽게 ‘K 의료’로 불릴 만큼 국제 경쟁력을 가진 분야가 적지 않다. 


반면 만성적인 의사 부족 현상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의료진의 수도권 쏠림과 필수진료 과목 전문의의 태부족으로 공공의료와 지방 의료계는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서울이 전남의 3배가 넘는다. 300병상 이상 공공병원 설치율은 서울이 100%인 반면, 광주·대전·울산은 0%로 전무했다. 경실련은 ‘치료 가능 사망률’을 사람 수로 환산하면 매일 61명, 한 해에 2만2000명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다고 추산했다. 충격적 수치다. 의료 서비스가 열악한 지역의 시민들이 생명권을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진료 공백을 빚어 응급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의사 수를 늘리는 게 확실한 해결책으로 꼽힌 지 오래지만, 그동안 의사협회 등의 반발에 부닥쳐 무산되면서 기형적인 의료 구조는 심화하고 있다. 2020년 기준 국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3.7명에 많이 못 미친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의료 선진국답지 않은 인력 규모다.


이는 사회에서 국민 건강권 보장이 강조되고 의료 서비스의 질이 중시되면서 증가한 의료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원인이다. 그런데도 전국 의과대학 정원은 2006년부터 3058명에 꽁꽁 묶여 있다. 의협 등 기존 의료계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서다. 


노동·교육·연금을 3대 개혁 과제로 정한 윤석열 정부는 최근 우선으로 노동 개혁 추진에 나섰다. 정부가 교육개혁과 직결된 의대 정원 문제를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 방안 마련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지방 의대의 파행은 의대 개혁의 당위성을 여실히 보여 준다. 비수도권 소재 의대 재학생이 중도에 그만두고 재수를 통해 수도권 의대로 진학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러니 지방은 의사가 절대 부족해 의료공백 사태를 빚는다. 


경남 산청의료원과 강원 속초의료원이 거액의 연봉을 내걸고도 각각 내과와 응급의학과 전문의 모집에 장기간 어려움을 겪는 현실이 단적인 예다. 대도시의 부산의료원마저 구인난 탓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5명에서 2명으로 감소해 응급실 운영을 하루 12시간으로 줄이기로 했을 정도다.


비수도권 환자들이 시간과 비용을 더 들여 수도권 병·의원을 찾고, 저소득층 환자 일부는 방치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가 22일 소아·청소년 전공의 부족에 따른 전국 종합병원의 소아 진료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개선책을 발표했으나 미봉책일 뿐이다. 이 밖에 내·외·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 역시 의대생들의 전공 기피로 의사 부족과 진료 공백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수도권의 필수의료와 공공의료의 어려움은 더더욱 처참한 상태다. 


해법은 공공의료 확충일 수밖에 없다. 3년 전 코로나19 국내 첫 감염 이래 증명됐듯 공공병원은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는 지역거점 기관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국의 공공병원 비율은 2020년 기준 5.4%로 OECD 평균(55.2%)보다 크게 낮다. 적극적으로 시설과 인력을 강화해야 한다. 날로 공급난이 심각해지는 소아과·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 부문의 전공의 확대 방안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최근 거론되는 의대 정원 증원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2035년이면 의사 2만7000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지역 및 공공병원에서 고액연봉 조건을 내걸고도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을 바꾸려면 국립의대가 없는 지역에 일정 규모 이상의 국공립 의대를 신설하고, 이곳 출신들을 지역에 의무적으로 복무하게 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현행 의대 교육제도에 정원 확대나 필수진료 과목 전공자 우대, 지방에서 의무 근무하는 지역의사제 도입 등 실효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이유다. 


정부의 결단과 적극성이 절실하다. 의대 개혁을 포함한 의료현안 해결을 위해 허심탄회한 의·정 대화가 시급하다. 세계 최고인 의료 수준에 걸맞게 빈틈이 없는 의료 인프라의 완성이 국민의 간절한 바람이다.

포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