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쟁 중독에 대한 고찰 2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부시 행정부에서 중동 정책을 총괄했고,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강경 기조를 밀어붙이는 데 앞장섰던 엘리엇 에이브람스는 지금이야말로 “신냉전이 준 기회”라며, 미국이 외부의 적에 맞서 초당적인 협력을 이뤄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당적을 불문하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치는 건 분명 멋진 일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모두가 합심해 전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그런다고 경제가 살아나거나 나라가 번성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지정학적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고조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전쟁 몰이에 제동을 거는 반대 의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논의를 거쳐 의견을 모으는 통합과 반대 의견을 묵살한 획일적인 의견 일치는 절대로 같을 수 없다. 다원주의 사회는 여러 가지 원칙과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다. 민주주의는 그 원칙과 가치를 바탕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상향식 시스템이다. 지도자의 말이 곧 법이 되는 하향식 권위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쟁이 온 국민을 똘똘 뭉치게 한다는 이야기도 자세히 뜯어보면 사실과 다르다. 퓰리처상을 받은 그렉 그렌딘의 책 “신화의 종말”에는 남북전쟁 이후 미국 정부가 아메리카 원주민과 전투를 벌일 때 남부와 북부 출신 군인들을 같은 부대에 편성해 서부 전선으로 보낸 이야기가 나온다.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전투는 남북이 공동의 적과 싸우면서 자연스럽게 화합하고 미국의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는 게 기존의 설명이다. 전쟁으로 분열된 남과 북을 잇는 일종의 “재활 프로그램”이었던 거다. 19세기말 스페인과 벌인 전쟁도, 이어 20세기 초의 1차 세계대전도 성조기 깃발 아래 싸우면서 미국이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방금 언급한 그 어떤 전쟁도 남북전쟁과 이후 짐 크로(Jim Crow) 시대로 이어진 남부의 여전한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갈등, 분열을 봉합하지 못했다. 남부군을 이끈 장군들의 동상 철거 문제나 남부군 깃발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대공황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번창하는 계기였을까? 공산주의의 발호를 막기 위해 벌인 냉전 시대의 경쟁이 국가의 단합과 기술 발전을 이끌어냈나? 과거를 아름답게 그리는 말들이 전부 다 틀린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미화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한 건 자유 진영을 구하려는 고상한 이유가 아니라 순전히 복수심 때문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전쟁을 거치며 경제 전반의 산업화에 속도가 붙었지만, 동시에 많은 미국인이 가난해진 것도 사실이다. 냉전 시대에 미국이 내부적으로는 단합이 잘 됐다는 이야기들은 엄연히 존재하던 인종차별이나 적색 공포와 같은 부조리를 오롯이 담지 못한다. 9.11 테러가 미국 사회를 또다시 뭉치게 했다는 설명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수렁에서 허우적대던 미국 사회의 내부적인 분열을 생각해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국가 안보나 군사력의 우위에 관한 잘못된 통념과 신화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가 번영하고 정치적으로도 원만한 타협이 일어난 시절을 보고 싶다면, 1990년대에 주목해 보자. 당시 미국은 전 세계 주요 분쟁에 마구 끼어들지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세계 경찰이 되는 것보다 무역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군수산업 관계자들은 물론 국방비 지출을 늘리면 그게 결국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도 늘어난다고 주장할 것이다. 늘어나는 일자리는 물론 주요 경합주와 경합 지역, 즉 유권자의 표가 중요한 곳에 집중될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힘의 외교를 펼쳐 온 미국이다 보니, 미국인이 국방비를 줄여 경제 성장에 투자하는 걸 꺼리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전쟁을 위해 많은 돈과 자원을 쏟아부어 이룩하는 경제 성장보다 평화를 택할 것이다. 최근 유라시아그룹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30세 이하 미국 성인의 대부분은 국방 예산을 줄이는 편이 더 좋다고 답했다.


미국 민주주의와 경제적 상황이 모두 순탄치 않은 요즘이다. 출처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동경하는 심리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국제정치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치인과 정책결정자들이 익숙한 과거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으로 사안에 접근하려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이는 곧 정치인들이 전쟁에 드는 비용과 피해는 줄여 말하고, 전쟁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부풀려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쟁이 민주주의 후퇴나 경기 침체를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은 앞뒤가 뒤집혔다. 전쟁은 공공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자원을 국내에서 효과적으로 배분할 기회를 앗아간다. 대신 전쟁 때문에 이 귀한 자원은 나라 밖에서 파괴적인 데 쓰인다. 즉, 전쟁이 민주주의와 경제를 살리는 게 아니라, 어리석은 전쟁 때문에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우리의 자원이 낭비된다는 설명이 더 정확하다.

 

 

원문: Straight Talk on the Country’s War Addiction, 중 

* Mark Hannah : 유라시아그룹 재단 선임연구원
조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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