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정치철학은 무엇인가?

힘없는 사람은 짖다 지치면 조용해진다
윤 측근 참모 배치한 ‘차관 정치’, 장관은 허수아비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단행한 개각은 집권 2년 차를 맞아 국정 개혁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친정체제 구축 차원이다. 윤 대통령은 통일부와 국민권익위원회, 인사혁신처를 포함해 14개 부처의 장 차관급 인사 15명을 교체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폭의 개각이다. 전문가들의 기용과 행정관료들의 내부 승진이 많았고,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들이 전진 배치됐다.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깊이 이해하는 측근들이다. 그러나 개각이 차관급에 집중된 건 아쉽다. 장관급 교체는 2명에 불과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분권형 책임장관제를 실천하겠다고 했다. 이번 차관 중심 개각은 책임 장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번 내각의 차관급 인사로 “차관들이 국정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위험한 발상이다. 차관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비정상이다. 차관들이 실세 행세를 하면 장관은 핫바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장관은 결재만 하고, 부처는 실세 차관들을 통해 하명을 실행할 것”이라는 시각도 일부 있다.


그러려면 장관을 둘 필요가 없다. 장관을 바꿀 때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문제가 된 부처의 장관들을 놔두고 차관들만 바꾸는 인사로는 대통령의 개각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데는 큰 무리가 있어 보인다. 대통령실 참모 5명을 주요 부처 차관에 임명한 것도 ‘실세 차관’ 시대를 연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이뤄진 인사를 합하면 7개 부처 차관에 대통령 비서관이 가게 된다.

 

김오진 관리비서관을 관련 경력이 없는 국토교통부 1차관에 지명한 것은 낙하산 인사 논란이 불가피하다.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장에 내정된 극우 유튜버 김채환 씨는 2021년 8월 당시 선제적 방역 완화 방안으로 군에 마스크 벗기를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군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았다”라고 해 물의를 빚은 인물이다. 유튜브에서 온갖 막말을 쏟아낸 인사에게 100만 공무원 교육을 맡기기로 했다니 참담하고 개탄스럽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기념행사에 참석해 행한 축사에서 전임 정부를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대통령실은 전임 정부나 특정 세력을 지칭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발언의 전후 맥락으로 볼 때 종전 선언을 추진하며 국제사회에서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했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보수 우익을 대표하는 단체 행사라는 점을 고려해도 발언의 정도가 지나쳤다. 대통령이 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현 정부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것까지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반국가 세력’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차원이 완전히 다른 얘기다. 대통령의 첫 번째 책무는 국민 통합이다. 이런 발언으로 야당을 자극하고 정치적 논란을 부르는 것은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또 “조직적으로 지속해서 허위 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이 야당을 겨냥한 것이라면 대통령은 심각한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다. 요즘 우리 정치는 여야가 진영 논리에 빠져 상식에 기반한 정치가 실종되다시피 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국정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국정에 무한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앞장서 여야 협력의 물꼬를 터야 할 판인데 상황이 더 악화할 것 같아 걱정이다. 당장 야권이 반발하고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저급한 인식’이란 표현까지 동원해 “깊은 실망과 함께 편협한 사고 체계가 매우 위험하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도 “점점 더 극우에 포획돼 가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논란이 확산하자 하루 뒤 대통령실은 언제나 발뺌 해왔듯 “지난 정부나 특정 정치세력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뺨 때리고 어르는 격’이 됐다. 야권을 향한 윤 대통령의 공격적 자세는 대결 쪽으로 더 기울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크다.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은 채 여소야대 정국의 10개월을 보낸다면, 사실상 내치를 방치할 수밖에 없다. 


국정운영의 무한 책임을 가진 대통령으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윤 대통령이 비판하고 있는 문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민 통합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그 시작은 야당에 대한 예우와 대화 노력이다.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고, 인내하면서 협치를 모색해야 한다. 어려운 길이기는 하나 그게 윤석열 정부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국정 동력을 얻겠다면 유능하고 청렴한 인재를 찾아 장관을 교체하고 그에게 책임과 권한을 실어주는 게 맞다. 장관이 아닌 차관이나 국·실장에게만 책임을 묻는 인사로 과연 ‘일하는 정부’를 만들 수 있겠나. 정책 혼선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각을 늦추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가뜩이나 ‘검찰 독식 인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은데 국민권익위원장에 또다시 김 전 부산고검장을 임명한 점도 아쉽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캠프의 네거티브 대응을 담당했던 검사 출신을 또 중용한 것은 ‘검찰 공화국’ 논란을 심화시킬 공산이 크다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막가파식이라면 걱정을 넘어 이젠 위기감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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