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 사이

詩 人 / 李生珍(1929~)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들어오나
기다리는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지난 몇해 전 봄 평사리 최참판 댁 행랑채 마당에서 박경리 문학관 주최로 ‘섬진강에 벚꽃 피면 전국 詩 낭송대회’가 열렸습니다.


60여 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낭송시가 바로 李生珍 詩人의 이 작품입니다. 


7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 낭송가의 떨리고 갈라지는 목소리에 실려 낭송된 이 시는 청중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젖게 하였습니다 


좋은 낭송은 시 속의 ‘나’ 와 낭송하는 ‘나’ 와 것을 듣고있는 ‘나’ 를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내 몸의 주인인 기억이 하나둘 나를 빠져나가서


마침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나이.  


나는 창문을 열려고 갔다가 그새 거기 간 목적을 잊어버리고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에 갔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앞이 막막하고 울컥하지 않습니까?


시인은 차분하게 이 참담한 상황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서로 모르는 사이가 /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 다시 모르는 사이로 / 돌아가는 세월”일 뿐이라고. 


그리고 자책하는 목소리에 담아 우리를 나무라지요. 


거창하게 인생이니, 철학이니, 종교니 하며 마치 삶의 본질이 거기에 있기나 한 것처럼 핏대를 올리는 당신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고… 


“진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나 사이’ 의 거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셈이지요. 


오늘도 당신은 좋은 일만 있을 겁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남호의 문학평론中

 

포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