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도시’로의 전환

하버드의 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2011년 베스트셀러 ‘도시의 승리’에서 도시를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 칭했다. 그의 도시 예찬은 인간이 모일수록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말하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며 어떤 면에서는 자연에 대해 도시라는 인류 문명의 승리를 알린 것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20세기 도시의 물리적인 구조가 새로운 경제와 충돌하고 있다. 1920년대 이후  도시는 주거와 일, 오락의 구역을 구분해 왔다. 재택근무와 넷플릭스로 인해 이런 구분이 무의미해졌음에도 조각보 같은 도시 구획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의 편리함과 경쟁할 수 있는 활기찬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일 용도지역제의 시대를 끝내고 복합용도, 복합소득 지역을 만들어 도서관과 사무실, 영화관과 식료품점, 학교, 공원, 식당과 술집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 집 밖으로 나와 외출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으로 느껴지도록 도시를 재편해야 하는 것이다. 한때 출퇴근 인파로 북적이던 거리를 되살리는 길은 기꺼이 머물며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로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이다.


1980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정보 기술로 인해 도심 지역의 사무실 공간이 거의 무용해지고, 노동자들은 주거용 ‘전자 별장’에 머무르게 되리라 예측했다. 이 예언은 40년째 실현되지 않다가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어 토플러의 말이 맞아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무실로 가득 찬 고층 건물들이 과거의 항구나 철도역처럼 새로운 기술에 도전받게 된 것이다. 코로나 초기만 해도 재택근무가 몇 주, 길어야 몇 달 정도면 끝날 줄 알았지만, 이제 대면과 비대면이 어느 정도 혼합된 형태의 근무가 계속될 거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사무실 근무가 완전히 돌아오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도시에서 함께 어울려야 할 사회적, 경제적 필요성이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MIT의 연구에 따르면, 대면 교류를 줌으로 대체할 때 사회생활의 범위는 좁아지고 단조로워진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병행 연구에 따르면, 회사 전체가 재택근무를 할 때 직원 간 협력 네트워크는 더 정적으로 변하고 고립되어 부서 간 연결 고리가 줄어든다.


온라인으로 가까운 친구 몇 명과의 우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약한 유대관계(예를 들어 복도나 버스에서 마주치는 지인들)의 네트워크는 이내 사라지고 만다. 다양한 배경이나 사상을 접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흐름도 줄어들게 된다. 재택근무는 사회적 다양성을 저해함으로써 혁신과 경제 성장의 저해를 불러올 수 있다. 사무실 근무가 우리 생활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없다면,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물리적인 공간에서 타인과 어울릴 기회를 새로 만들어 내야 한다.


도시 거주민들이 집 근처를 벗어나도록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사람들이 더는 돈을 벌기 위해 시내로 모여들지 않는다면, 모여들 만한 유인이 있어야 한다. 일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사는 곳, 즐기는 곳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놀이터 도시’의 청사진이다.


이는 새로운 발상이 아니다. 도시가 제공하는 ‘즐거움’은 이미 197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도시의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 역할을 했다. 식당, 공원, 극장, 광장 같은 거리 인프라는 도시 네트워크의 사랑방 역할을 한 지 오래다. 17세기와 18세기 런던에서 커피하우스는 조슈아 레이놀즈, 에드먼드 버크, 사무엘 존슨과 같은 예술가, 정치인, 학자들을 한 곳에 모으는 역할을 했다. 커피하우스는 우연한 교류가 일어나는 공용 거실과 같았다. 사무엘 존슨은 ‘놀이터 도시’의 개념을 가장 잘 설명한 인물일 것이다.


‘놀이터 도시’는 일상 속 일들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산업 도시나 오피스 도시와 다르다. 소수의 엘리트뿐 아니라 다수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생활과 노동, 여가가 한데 어우러지는 복합용도 지역에 다양한 사용자가 하루 24시간 내내 오가는 생산적이고 유쾌한 역동성을 만들어 진다. 뉴욕의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이를 ‘보도 위의 발레’로 칭한 바 있다.


‘놀이터 도시’로의 전환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도시는 자신보다 더 저렴하고 편리한 다른 도시를 선택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거주민을 유치하고 이들에게 행복을 주는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인용 : 26 Empire State Buildings Could Fit Into New York’s Empty Office Space.
 That’s a Sign., 
By Edward L. Glaeser
 and Carlo Ratti
조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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