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빈곤’

값을 매기기조차 어려운 불평등…

만약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떤 요인이 우리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혹은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것만 따질 게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는 숨은 요인까지 정확히 찾아내야 한다면 세상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우선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많지 않을 것이다. 불평등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드리운 가장 어두운 그늘 가운데 하나이다. 너무 심한 불평등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동력을 떨어뜨리기도 하므로, 자본주의 체제를 신봉하는 사람들도 불평등을 문제로 생각한다. 


이념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갈수록 극심해지는 불평등은 세상 사람들이 다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껏 우리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내놓은 수많은 정책과 대책은 주로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했다. 불평등을 측정하는 기준이자 지표가 소득이나 재산, 부와 같이 눈에 보이는 것들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쩌면 훨씬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인은 바로 시간일지도 모른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이써 맥컬리(Esau McCaulley)는 불평등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요인으로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쩌면 훨씬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인으로 시간을 꼽고 있다.


시간의 불평등,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시간이 구조적으로 공평하지 않게 배분돼 있다는 점이 바로 지금의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더욱 고착하는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맥컬리는 지적한다.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대학을 나온 고등교육 프리미엄은 막대하다. 시간의 불평등을 해소한다고 모든 불평등이 기적처럼 사라지는 일은 물론 없겠지만, 반대로 시간의 불평등, 또는 시간의 불평등에서 비롯된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손보지 않는 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시장 자본주의는 이른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일은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더 높은 효율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최소한으로 해야 할 책무로 여긴다. 그러나 서로 출발선이 다른 상황에서는 아무리 경쟁을 강조해 봤자, 더 효율이 높아지기는커녕 분열과 반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시간과 기회의 평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을까? 


다음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이써 맥컬리(Esau McCaulley)의 칼럼중 일부이다.


‘시간의 빈곤’, 값을 매기기조차 어려운 불평등...

A Hidden Currency of Incalculable Worth, By Esau McCaulley


가난은 가장 무자비한 시간 도둑이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부모는 돈을 버느라 자녀와 보내야 할 시간을 매일 몇 시간씩 빼앗긴다. 자녀의 스포츠 경기나 합창대회, 발레 공연에 가지도 못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가 집에서 숙제하는 것도 도와주지 못한다.


가난은 토요일 아침에 잠옷 바람으로 아이와 소파에 앉아 만화 볼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게을러서 그렇다는 잘못된 믿음은 끈질기게도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 가운데, 현실 속 수많은 부모들은 오늘도 자식들에게 안정적인 의식주와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낮은 급여를 마다하지 않고, 시간표를 마음대로 짤 수 없는 장시간 노동에 뛰어든다.


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가리켜 시간의 빈곤이라고 부른다. 사실 무언가를 할 시간이 없는 걸 빈곤의 징표로 삼는 것이 다소 낯설 수 있다. 그러나 가난이란 삶의 모든 측면에서 귀중한 것을 앗아간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시간의 빈곤’은 의미 있는 통찰이다.


미래를 꿈꿀 때 나는 한 번도 시간 부자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대신 손에 쥘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을 나와 내 가족에게 줄 수 있기를 갈망했다. 내 아이들의 자존감을 뒷받침해 줄 만큼 단단한 재정적인 벽을 쌓아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옷장에 있는 몇 벌 안 되는 옷들을 바라보며, 뭘 입어야 그나마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꿈꿨다. 초라한 집을 보여주기 싫어서 친구를 선뜻 집에 초대하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나 생일에 원하는 선물을 받아 들고 정말로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그런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은 어디 있을까? 여기서 다시 시간이 등장한다. 경제적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오르는 가장 확실한 길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서 대학교 졸업장을 따는 거다. 때로는 석사나 박사 학위가 있으면 더 좋다. 공부를 잘하려면 많은 것이 필요한데, 여기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시간이다. 좋은 일자리를 얻고,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려면 또다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우리는 부모 세대와 달리 생존을 위해 시간을 거래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희생하곤 한다. 누구도 우리한테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어느 시점이면 월급을 좀 덜 받더라도 나와 가족을 위해 시간을 확보하는 편이 더 나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항상 지금 사는 집보다 더 좋은 집, 지금 자녀가 다니는 학교보다 교육 환경이 더 좋은 학군이 있기 때문에 돈은 늘 다른 것을 제치고 우선순위가 된다.


반대로 시간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숨겨진 화폐와도 같다. 대신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수많은 연구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부모가 아이들과 보낸 시간은 아이들의 정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부모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아이일수록 학교생활도 잘하고, 새로운 환경에도 잘 적응한다.


시간이 중요하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정작 시간을 인식하고 아껴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알게 모르게 시간을 허비하며 산다. 자녀가 어릴 때 부모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기에 더욱 귀한 자원이다.


딸아이가 열두 살 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지금보다 20% 더 많은 물건을 가질 수 있거나 20% 더 많은 시간을 누릴 수 있다면 둘 중 어떤 걸 택할 거니?”


딸아이는 지체 없이 답했다. “아빠랑 보내는 시간인 거예요? 그럼 당연히 시간이죠. 물건이야 지금보다 더 많아 봤자 어디 둘 데도 없는걸요?”


아이들의 말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부모가 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해서 배우고 고쳐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는 법이다.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의 재산은 어느 정도일까? 들이는 품과 뽑아내는 결과를 비교했을 때 어느 시점부터 돈보다 시간을 더 귀하게 여기라는 답이 나올까? 


나는 지금 ‘워라밸’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일과 삶의 균형을 제대로 잡는 것도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우리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커다란 부를 쌓아도 언제나 우리가 번 것보다 더 벌 수 있는 여지는 있기 마련이며, 그러는 사이 우리에게 돈보다 훨씬 더 소중한 자식을 시야에서 놓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고민이 어쩌면 실존적인 질문을 숙고할 여유가 있는 특권층이나 겪을 법한 딜레마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거다. 일리 있는 비판이긴 하지만, 동시에 꼭 그렇게만 볼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스스로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을 남을 위해 소중히 여기는 건 엄연한 모순이다. 돈이 많은 부모가 반드시 좋은 부모라는 법은 없다. 


건강한 사회를 누구나 머물 곳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으며, 노동의 대가를 부양하는 가족과 충분히 즐길 시간이 보장된 사회로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상을 위한 노동의 대가로 생활 임금이 보장돼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가난을 어딘가 부족한, 모자란 거라고 믿는다. 가난한 사람을 벌하고, 채찍질을 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결국, 이런 믿음에서 비롯된다. 가난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힘들어지면, 가난한 사람이 더 열심히 일해서 어떻게든 가난에서 벗어나려 할 거라는 가정이다. 그래서 냉대를 다 잘되라고 하는 이야기이자, 심지어 사랑의 표현이라고 미화한다. 그럼 자연히 가난한 사람은 여가와 같은 사치를 누려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다.


내 어머니는 가진 게 많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와 우리 형제를 돌보고자 정말 열심히 일하셨다. 내 어머니 같은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도 좀 더 건강하고 나은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용 : A Hidden Currency of Incalculable Worth 
By Esau McCaulley
조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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