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보다 이념 앞세운 긴축 재정

심상치 않은 국제 유가 우리 경제 먹구름

 고유가·고금리·고환율의 3고 우려가 우리 경제에 또다시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당초 정부가 예상한 ‘상저하고’의 경기 흐름이 물 건너가고 ‘상저하저’가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산유국 연합체 OPEC+ 회원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감산을 연장하기로 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경제에는 직격탄이다. 감산 연장의 주요 이유는 중국 경기의 침체 가능성이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다. 여기에 달러당 1330원을 웃도는 고환율이 기름을 붓고 있다. 지난 6월부터 반전된 무역수지가 다시 적자 전환할 가능성이 커졌다.


서부텍사스유(WTI)를 비롯한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 10개월 만에 최고치다. 미국 월가 일각에선 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내놓고 있다. 사우디는 연말까지 하루 100만 배럴 감산을 이어가기로 했고, 러시아는 하루 30만 배럴 수출 감축을 유지하기로 했다.

 

고유가는 최근 진정세를 보이던 인플레이션도 자극하고 있다. 안 그래도 추석을 앞두고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석 달 만에 3%대로 치솟은 마당이다. 글로벌 물가상승률이 다시 반등하는 ‘2차 인플레이션 쇼크’ 우려마저 나온다. 미국 중앙은행의 연내 통화정책 전환 기대가 사그라들고 긴축 기조를 이어가거나 추가 금리 인상마저 불러올 수 있다는 공포가 커지는 것은 그 여파다. 사상 최대로 벌어진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를 고려하면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도 있다.


당장 한국경제가 또다시 시련을 맞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경기 부진은 계속되고 있고 물가 오름세는 심상치 않은데 유가 급등이란 초대형 악재까지 덮쳤다. 실물경기는 지난 7월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줄어드는 ‘트리플 감소’가 나타날 정도로 좋지 않다. 수출은 11개월 연속 줄어들었다. 6~7월 2%대로 떨어졌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에 3.4%로 뛰어올랐다. 무역수지 악화도 불가피해 보인다. 무역수지는 작년 3월부터 15개월 연속 적자를 내다 지난 6월 이후 석 달째 흑자를 내고 있지만, 속사정은 좋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제 유가의 불안한 흐름에는 기약 없이 늘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미·중 대립 구도 속에 불거진 중국 경제 불안은 이제 시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연례협의를 통해 “중국발(發) 위험이 내년 한국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동차, 철강, 조선, 철도 등 국가기간산업에서는 파업위기까지 고조된다. 현대·기아차, HD 현대중공업, 포스코 노조가 기본급 인상도 모자라 성과급과 정년연장 등까지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할 태세다. 이 지경인데도 정부의 위기감은 찾기 힘들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하반기에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는 ‘상저하고’만 되뇌며 “4분기 중 수출이 플러스 전환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도 “9월 이후에는 상저하고 전망이 지표로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정부 관료들의 막연한 낙관론을 펴고 있어 이젠 정부가 더 무섭다. 시장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다. 


이제야말로 경제주체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정부는 비상한 각오로 스태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는 비상체제를 가동하고 고유가 장기화에도 대비해야 한다. 유류세 인하 연장과 같은 미봉책으로는 어림없고 서민 부담을 덜 수 있는 창의적이고 비상한 대책을 짜내야 할 때인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어제 고유가와 중국 경기불안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경기가 제약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IMF도 올 하반기 경기 회복이 기대보다 더디고 내년에는 중국의 부동산발 경기침체로 한국경제 성장에 하방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고 했다.
가뜩이나 꿈틀거리는 국내 물가 또한 더 높은 인상 압박을 받게 된 것이다.

 

소비자물가는 지난달 3개월 만에 다시 3%대에 진입한 상태다. 전월 대비 상승 폭(1.1%포인트)이 2000년 9월 이후 가장 크다. 여기에 유가 부담까지 가중되면 ‘2차 인플레이션’ 충격파를 피하기 어렵다. 추석을 앞두고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는 이미 비상이다. 에너지 수급과 가격을 조절해 가며 추가적인 물가 자극 요인들을 관리해 나갈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연말까지 평균 유가를 84달러로 상정하고 ‘10월 이후 물가 안정’을 점쳤던 재정 당국의 느슨한 전망부터 즉시 수정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세계 13위이고, 1인당 소득도 3만3000달러를 넘어 비록 세계 30위권에 머물지만, 영국과 프랑스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선진국이란 말이 그리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발전은 과연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는 매우 곤혹스럽다. 사회적 연대의 해체, 극단적 대치의 정치, 배려와 존중의 상실 등 한국 사회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비유되는 것이 과장이 아니게 들린다.이상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최적의 상태를 모색해야 하는 정치는 권력정치에 매몰되어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여야의 정치적 계산만 난무하다.

 

나라의 권력을 틀어쥔 집권집단은 야당을 대화의 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야당은 진보적 의제를 거론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깊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있어 이번 위기는 쉽사리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한국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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