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전산망 먹통 원인 두고 갈팡질팡… 디지털 정부 자랑한 나라 망신

 일주일 새 네 차례나 오류를 일으켰던 행정 전산망 중단 사태의 책임이 ‘장비 유지보수’를 내버려 둔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에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번 사태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오류를 일으킨 정부 전산망은 모두 네 가지다. 지난 17일 시도 새올행정시스템인 민원24 장애로 민원서류 발급이 중단된 데 이어, 주민등록시스템이 20여 분 멈췄고, 조달청 나리 장터 사이트가 1시간 마비돼 1600건의 발주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디지털 정부의 자랑인 모바일 신분증까지 먹통이 됐다. 참으로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정부는 17일 발생한 행정 전산망 먹통 사태가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의 포트 불량 때문이라고 25일 밝혔다. 라우터의 물리적 손상으로 전산망이 마비됐다는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 사고 원인을 밝혔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사용 기한도 지나지 않은 라우터가 왜 고장 났는지 라우터 고장이 확실한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또한, 복잡한 소프트웨어 오류가 아닌 단순한 기계적 오류라는 것이다. 접속 불량 탓에 한글 기준 750자가 넘는 크기의 문서는 데이터의 90%가 날아가는 오류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접속 불량이 국민이 필요한 서류 발급 등 1300종의 민원 서비스가 56시간 동안 중단됐던 전산망 먹통 사태의 원인이라니 어이가 없다.


그동안 정부는 ‘디지털 정부 선진국’을 자처해 온 한국은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 게다가 일선 공공기관 민원서류 발급 중단으로 주민등록등본 등 서류가 필요한 전세 계약, 금융거래가 올 멈추면서 국민 피해가 잇따랐다. 


부실투성이 정부의 서비스망을 내버려 둔 채 정부는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 사고 당시 이 장관은 디지털 정부를 알린다며 포르투갈과 미국을 순방 중이었다. 전산망 마비 사태로 긴급 귀국한 이 장관은 시스템을 완벽히 복구했다며 다시 디지털 협력차 영국으로 떠났는데 국내에선 조달청 시스템에 탈이 났다. 조기 귀국한 이 장관은 지난 21일 영국 정부와 디지털 정부 협력 관련 양해각서 체결 등을 이유로 또다시 해외 출장을 떠났다. 행정 전산망 총책임자가 전산망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해외 출장에 나섰다가 두 차례나 귀국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또한, 부산 벡스코에서 디지털 민관 협력 행사를 열었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일 잘하는 정부와 더 편안한 국민을 위해 민관이 힘을 모은다’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여기서도 모바일 신분증 에러로 망신을 당했다. 국내외에서 홍보전을 벌이는 동안 정부 전산망은 여기저기서 비상벨이 울렸으니 디지털 정부를 자처한 대한민국의 망신살을 광고한 꼴이 되어버렸다.


행안부는 이번에 디지털 플랫폼 정부라는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허점을 드러냈다. 전산망 사고 때 최우선 과제는 백업 시스템의 즉각 구동, 발 빠른 원인 규명이다. 우선 사고 원인을 두고 갈팡질팡했다. 사고 당일엔 “전날 밤에 했던 보안 프로그램 업데이트에 따른 오작동 같다”고 추정했다. 이틀 뒤엔 “네트워크 장비인 L4 스위치에서 에러가 생긴 듯하다”고 했다. 2차례 신형 장비로 교체하기도 했다. 


행정 전산망 먹통 이후에도 22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시스템 오류, 23일 조달청 나라장터 시스템 접속 지연, 24일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 중단 등 1주일 새 네 차례의 마비 사태가 잇따라 발생했다. 외부 해킹 등이 아닌 일시적 접속량 증가에 행정이 마비됐다는 사실은 우리 전산망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 것이다.


동일 기능을 가진 예비용 장비를 자동으로 가동하는 이중화 대비를 해놓긴 했지만, 장비가 작동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카카오 불통 사태 때 예비 망조차 구축해 놓지 않았던 점을 질타했던 정부로서 할 말이 없게 됐다. 


행안부는 “전체가 아닌 일부 장비에만 이상이 생겨 이중화가 실패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1년 뒤에라도 전산망 일부에서 에러가 나면 그때도 백업 작동은 안 될 수 있다는 설명 아닌가. 이번처럼 작동하지 않는 예비용 장비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전산시스템 개발과 운영을 외부에 위탁하고, 정부 부처는 시스템을 관장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라는 전문가 지적이 나온다. 또한, 정부 시스템을 개발·운영하는 업체가 1400여 개나 된다고 한다. 


개별적으로 중구난방 개발되거나 저장된 데이터는 체계적이지 않고 정부 서버에 중복으로 저장돼 있다고 하니 이번처럼 사고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개입해 복구분석을 해야 하는데 정부 전산 인력이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닌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산망 업체와 장비 선정, 관리까지 행정망 관리시스템의 문제점을 자세히 살피고 새로운 위기대응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원점부터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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