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없는 줄 감세 재정 준칙 깬 운용… 나라 살림 어떡하나?

 정부가 잇따라 감세 정책을 추진하면서 내년 나라 살림 적자도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어서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의 잇따른 감세 정책으로 국가재정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글로벌 기준으로 손봐야 하는 세금 제도가 분명 있긴 하지만 감세를 상쇄할 세수 확보책을 세우는 것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국회의 자료를 종합하면 최근 정부가 한 달간 쏟아낸 정책만으로도 당장 내년 세수가 최소 2조5천억 원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말 정기국회에서 통과된 세제 개편안이 시행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정부가 법률 개정이 필요한 새 감세안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금융위원회가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에게도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가입을 허용해 투자 수익에 붙는 세금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밝히며 상속세를 추가 완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총선을 앞두고 마구 쏟아내는 수십 가지 감세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세수 기반이 더 약화하고, 정부·여당이 그동안 소리 높여 도입을 요구해온 ‘재정준칙’의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 3% 이내’ 기준을 내년에도 지키기 어렵게 된다. 위선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나라 살림 운용이 ‘날림’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최근 20일 사이 정부가 발표한 감세안 가운데, 세수 감소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것만도 2조 원이 훌쩍 넘는다. 임시투자세액공제가 1년 더 연장된 데 따른 세수 감소는 1조5천억 원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추정에 따르면, 내년부터 시행되는 금융투자 소득세 세수 예상액은 8천억 원이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 세제 혜택을 확대할 경우, 세수가 2천억∼3천억 원 줄어들 것이라고 정부는 예상했다. 다른 감세 항목들을 제쳐두고 이 세 가지만 합해도 세수 감소가 2조5천억∼2조6천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 상속세까지 완화하면 3조 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다.


정부가 줄곧 강조했던 재정준칙 준수, 건전재정 기조도 무색해지고 있다. 한 달간 발표된 감세 정책으로 줄어드는 세수만 적용해도 내년 재정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웃돌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추진 중인 재정준칙 도입안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GDP의 3% 이내로 묶는 것이 골자다. 이렇게 되면 정부 스스로 재정준칙 상한을 허무는 꼴이다.


정부가 건전재정 기조로 재정 지출 최소화에 나섰음에도 세수 부족으로 인해 나라 살림 규모는 65조 원 적자를 기록했다. 경기 침체로 기업 법인세가 줄었고, 부동산 거래 감소로 소득·양도세 등이 줄어든 탓이다.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지표인 관리재정수지는 정부 실제 살림살이를 가늠하는 지표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58조2천억 원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11월까지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정부 전망치보다 6조7천억 원 쪼그라들었다. 


“올해 선거를 치르는 국가는 재정정책 지출 압박으로 매우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다”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말했다. 그는 워싱턴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재정정책이 완충장치를 재건하고 많은 국가에 누적된 부채를 처리해야 하므로 올해는 매우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따라서 정책을 너무 빨리 완화하지도 너무 느리게 완화하지도 않는 가장 까다로운 지점에 서 있다.


‘숨은 보조금’으로 불리는 조세지출(비과세·감면)은 올해도 정부와 국회 사이 무풍지대다. 혼인 공제, 연구개발(R&D)·새만금 예산 등 갈등 이슈가 전면에서 주목받는 동안, 올해 일몰 도래 예정인 조세지출 71건 중 6건만을 종료한다는 정부안은 국회 세법심의 과정에서 그대로 수용돼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선거를 의식한 특례는 올해도 관례처럼 이어지고 있다. 표를 의식하는 이상 행정부도 입법부도 재정 누수 요인을 통제할 수 없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60조 원 규모의 역대 최대 ‘세수 펑크’는 선거 후 재정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국민개세주의’ 원칙에 따라 조세지출 정비에 구속력을 부여하는 방안을 하루빨리 검토해야 할 것이다.


금투세 폐지, 임투 연장, ISA 조치만으로도 재정준칙의 상한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재정준칙을 지키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까지 관리재정수지는 64조9천억 원 적자로 정부의 예상치를 웃돌고 있다. 남은 12월에 2조 원 이상 적자가 늘어나면 GDP 대비 3%를 넘어선다. 올해의 경우 관리재정수지는 91조6천억 원 적자로 GDP 대비 3.9%의 적자 비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때부터 재정 건전성을 강조해왔지만, 내년까지 4년 연속으로 재정준칙을 준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정부는 경쟁력 잃은 낡은 관행과 제도는 개선을 위해 뚝심 있게 밀어붙여야 하지만 재정이 위협받아선 안 되는 일이다. 정부의 세수 확보책은 지금보다 과감하고 강력한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내년에도 3%를 지키지 못할 사태를 스스로 만들면서 재정준칙이니 건전재정이니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재정 지출을 마구 늘려도 부작용이 크지만, 세금을 마구잡이로 깎아주는 것도 나라 살림을 황폐화할 수 있다. 책임감을 가진 정부라면 피해야 한다.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집권 3년째에 이르기까지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이라고 부를 만한 게 오직 ‘감세, 감세, 감세’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무지와 무능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흘러 드러날 그 후과가 우려스럽기만 하다. 기재부는 보도설명자료에서 “조세정책 과제들이 세수에 미치는 영향은 거시경제 전체적인 상호작용을 고려해 평가될 필요가 있다”며 “최근 발표된 조세정책 과제들은 투자·소비 등 내수경기 회복 및 성장을 뒷받침하고 세원을 근본적으로 확충해 성장-세수의 선순환에 이바지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선순환이 현실화하는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세수 증대는 장기적인 시야에서 가능하다는 점에서 당장 재정 악화는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순환 논리는 이론상 존재하지만 실현된 적은 거의 없다. 특히 경기가 안 좋은 시점에 실현된 적은 더더욱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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