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정부와 의협의 강대강 대치, 결국 참변으로…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집단사직 등으로 지역·필수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랑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구조된 33개월 여자아이가 응급치료를 받은 뒤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을 추진하다가 대부분 거부당하며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A양은 심폐소생술과 약물 투약 등 응급치료를 받고 심전도 검사(EKG)에서 맥박이 돌아왔었다. 병원과 소방당국은 A양의 상태가 심장이 다시 뛰어 혈액이 도는 상태인 자발적 순환회복(ROSC)에 이른 것으로 판단, 추가 치료를 위해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이송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수도권과 세종, 충남, 충북 5곳의 상급병원에선 소아 중환자를 받을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A양의 이송요청을 거부했다. 무려 9곳에 전원을 요청했는데 했지만, 소아 중환자를 받을 병상 부족을 이유로 이송을 거부당했다. 이송을 허용한 건 A양이 숨지기 직전인 오후 7시 29분 대전의 한 대학병원이 유일했다고 병원 측은 전했다. 


병원 관계자는 “소아청소년과 중환자실은 병실이 많이 없고, 병원들도 힘들게 운영하고 있다”라며 “이번 일은 의사 집단행동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당시 A양의) 병원 도착 후 상태, 전원이 가능할 만큼 생체 징후가 안정적이었는지 여부, 전원을 요청받은 의료기관의 여건 등 내용에 대해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는 사이 A양은 오후 7시 1분께 다시 심정지 상태에 빠졌고, 결국 약 40분 뒤 최종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송을 거부한 한 대학 관계자는 “의료공백 사태로 전원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라며 “보은에서 40분 거리인 상급병원으로 옮겨오면 오히려 환자의 상태가 더 악화할 가능성 때문에 전원을 받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병원 관계자는 의료 파업으로 의사가 없다는 후문이다.


지난달 25일 때부터 대학별로 사직 의사를 밝혀온 의대 교수들이 1일부터 외래진료와 수술을 축소하기로 하면서 비슷한 사례가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전국 20대 의과대학 교수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남아있는 의료인력의 체력 소진 등을 이유로 외래진료와 수술 등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의료공백 사태가 7주째 이어지는 동안 상급종합병원 이송이 거부당해 숨진 사건이 발생했지만, 복지부 점검에서 의사들의 병원 이탈이 원인으로 파악된 사례는 아직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의료공백으로 수많은 중증 환자들은 수술을 연기하거나 제때 받아야 할 치료를 받지 못해 불안에 떨고 있다. 진료 차질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교수들이 진료 축소까지 예고한 상황이라 환자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병원들은 이송 거부가 의료공백 사태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경찰과 보건당국은 사고 경위를 자세히 따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부산 90대 환자가 심근경색으로 대학병원에 긴급수술 전원을 요청했다 거절당한 뒤 숨졌고, 대전 80대 심정지 환자는 응급실을 돌다 사망 판정을 받았다.


만약 이런 사고들이 전공의 집단사직 영향이 아니라면 더더욱 의대 증원을 거부해선 안 되는 명백한 이유일 것이다. 필수 의료에 종사할 의사를 확충하지 않고 ‘응급실 뺑뺑이’ ‘소아청소년과 오픈런’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겠나. 갈수록 상황은 비관적이다.


전국 의대 교수비상대책위원회는 “물리적, 체력적 한계가 온 것 같다”라며 오늘부터 근로시간을 재조정하겠다고 했다. 근무시간을 줄여 외래와 수술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비록 “비필수 의료를 줄이고 필수 의료에 신경을 더 쓰겠다”라고 했지만, A양 같은 사고가 더 늘어날 거라는 우려가 만만찮다. 평시에도 빈번했던 이런 사고를 전공의가 빠진 지금 인력으로 막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의·정 모두 조건을 내려놓고 당장 대화의 장에 나와야 한다. 더 많은 환자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으려면 그것 외에 방법이 없다.


대통령실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침변경 불가를 재확인하는 한편, 의료계와의 대화를 기다리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의대 정원 배정이 끝났기 때문에 되돌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의협은 이번 참사를 두고 의료 파업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익명을 요청한 환자단체 관계자 C씨는 “환자들은 죽어가고 있는데 정부와 의료계는 언제까지 싸움만 할 것인가”라고 토로했다. 


이번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2 제3의 참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이 필수과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면서 증원을 반대하는 건 비합리적이라는 비판도 의식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의협의 강대강 대치로 의료공백이 길어진다면 국민의 불편만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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