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우리는 신뢰하지 않는 것보다 신뢰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는 주변에서 사람을 너무 믿어서 고통받는 이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사기 피해를 입은 고객, 연인에게 배신당한 사람,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은 사람 등 다양하다. 당신도 누군가를 믿었다가 상처받은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런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타인을 너무 믿고, 속아 넘어가기 쉬운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미국이나 대부분의 선진국의 상황을 볼 때, 수집된 신뢰 관련 최근 데이터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타인을 믿을만한 존재로 여기는지를 말해주는 ‘대인 신뢰도’는 5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실제로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을 가능성은 낮다. 실제로 범죄율은 지난 수십 년 간 크게 떨어졌고 주류 미디어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정확성을 자랑하고 있음에도, 언론에 대한 신뢰도 역시 바닥을 기고 있다. 과학에 대한 믿음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기후 변화나 백신 문제에 이르기까지 과학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사회과학자들에게 있어 사람들이 얼마나 신뢰를 하는지, 얼마나 신뢰할만한 존재인지를 연구하는 방법으로 ‘익명의 두 사람이 참여하는 신뢰게임(trust game)’이 있다. 참여자 1에게는 소액의 돈이 주어지고, 참여자 2에게 얼마나 돈을 떼어 줄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참여자 2는 그 액수의 세 배에 해당하는 돈을 받아 다시 얼마를 돌려줄 지를 결정해야 하는 게임이다.

 

여기에는 신뢰에 대한 보상이 있다. 참여자 1이 더 많은 돈을 건넬수록 참여자 2는 더 많은 돈을 돌려줄 수 있고, 따라서 참여자 1이 갖는 돈도 많아진다. 그러나 참여자 1은 평균적으로 처음 주어진 액수의 절반 정도만을 상대에게 건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여자들에게 상대의 인종을 알려주는 등의 변수를 도입한 연구도 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은 불신으로 이어져, 이들이 다른 집단과 견주어 믿을만한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적은 돈이 넘어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렇게 사람과 제도가 우리 생각보다 더 믿을만한 것이라면, 왜 우리는 신뢰를 조정하지 않는 것일까? 왜 더 믿음을 갖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할 때 우리는 그 신뢰가 정당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파악하게 된다. 지인이 집에 며칠 머물다 가도 되겠냐고 물어올 때, 이를 수락하면 그가 좋은 손님이었는지 아닌지를 알게 되며 동료가 새로운 제품을 써보라고 조언할 때, 그 조언을 따라야 그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나은지를 알게 된다.

 

반면, 누군가를 불신한다면 그가 믿을만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지인을 집에 초대하지 않는다면 그가 좋은 손님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고, 동료의 조언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제품이 좋은지 나쁜지, 그 동료가 이 분야에서 믿을만한 조언자인지 아닌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이란 우리가 불신보다 신뢰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우리는 신뢰를 통해 특정 개인에 대해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더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더 신뢰함으로서 더 나아지는 것이다.

 

미디어를 더 신뢰하는 사람들이 정치와 뉴스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고 과학을 신뢰하는 사람일수록 과학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진다. 이 증거가 상관관계로 남는다 해도, 더 잘 믿는 사람이 누구를 믿을지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은 말이 된다. 신뢰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연습을 통해 완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만일 신뢰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우리는 믿음을 아낄 일이 아니라 믿음이 지나칠 정도로 믿어야 한다. 그러나 아이러닉하게도 우리가 신뢰해야 하는 이유, 즉 우리가 불신보다 신뢰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불신하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배신당했을 때, 즉 믿지 말아야 할 이를 믿었을 때 그 대가는 눈에 두드러진다. 우리의 반응도 짜증에서부터 분노와 절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이점은 간과하기 쉽다. 반대로 믿었어야 할 누군가를 믿지 않았을 때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인을 집에 머무르게 해주었다면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애초에 맺어지지 않은 우정에 대해서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추천 받은 제품을 써보지 않는다면, 그 제품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우리가 충분히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잘못 믿었다가 치르게 되는 대가가 눈에 보이는 반면 믿음으로서 얻게 되는 것과 믿지 않아서 치르게 된 대가는 그만큼 두드러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숨겨진 비용과 이점, 즉 신뢰함으로서 배우게 되는 것, 얻게 되는 사람, 습득하게 되는 지식 등을 잘 고려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를 믿어 보는 것은 도덕적인 일일 뿐 아니라 스마트한 선택이기도 하다.

 

인용: we learn more by trusting than by not trusting

by Hugo Mercier

포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