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화 향내를 내는 삶

 

한 독일 목사가 미국으로 이민 가서 뒤뜰에 라일락이 핀 집을 세로 얻어 이사했다. 이사 다음날, 뒤뜰에 나가보니 옆집에서 쓰레기를 갔다 놨다. 실수로 그랬는줄 알고 치워줬는데 다음날도 그랬고, 그 다음날도 또 그랬다. 그때 그의 아내가 아들에게 지혜롭게 말했다. “얘야! 내일 아침 뒤뜰에 또 쓰레기가 있으면 그 위에 예쁜 라일락 한 송이를 얹어놓아라”

 

아들이 어머니 말씀대로 이웃이 매일 쓰레기를 갖다 놓을 때마다 그 위에 라일락꽃을 얹어 놓았다. 얼마 후부터 쓰레기는 슬며시 사라졌다. 행복은 절망의 쓰레기 위에 라일락꽃을 놓고 고통의 가시밭에서 백합화 향내를 낼 때 주어진다.

 

아름다운 삶은 어떤 삶인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이성의 지나침도 없고 돈키호테처럼 감정의 지나침도 없는 ‘이성과 감정이 조화를 이룬 삶’은 아름답다. 회색의 군중 속에서 여론이란 무명씨에게 끌려 다니지 않는 ‘현명한 개성을 갖춘 삶’도 아름답고, 만리장성을 보고 감탄하기 전에 그것을 쌓기 위해 흘린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양심의 소리에 민감한 삶’도 아름답다.

 

우주의 광대함과 시간의 영원함에 자신의 왜소함을 느끼고 저기압의 격랑에 휘말리기보다는 복슬강아지와 노는 아기의 순수한 눈 속에서 영원을 바라보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삶’도 아름답고, 고독 속에서 인격을 다져 고독을 시로 승화시키는 삶처럼 ‘고통의 가시밭에서 백합화 향내를 내는 삶’도 아름답다.

 

어느 날, 한 나그네가 진한 향기를 내는 진흙을 얻고 진흙에게 물었다. “너는 바그다드의 진주냐?” 진흙이 대답했다. “나는 진주가 아니오.” 나그네가 또 물었다. “그럼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 진흙이 대답했다. “나는 사향도 아니오.” “그럼 너는 무엇이냐?” “나는 한줌의 흙일뿐이오.” “그러면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 “그 비결은 나는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아서 그렇소.”

 

가장 아름다운 삶은 ‘가시밭의 백합화’의 삶이다. 백합화 씨가 가시밭에 떨어지면 기운이 막혀 대개 죽지만 그때 살아남으면 가장 진한 향기를 발하게 된다. 사랑이 있다면 가시밭 세상에서도 백합화처럼 살 수 있다. 인생의 가시는 무익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다. 성인(聖人)들에게도 가시가 있었고 그 가시가 오히려 성인을 만들었다. 가시가 불행이 아니라 가시를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것이 불행이다.

 

가시에 찔리면 고통스럽지만 그럴수록 사랑의 성숙도는 높아진다. 동풍이 불면 서쪽 가시에 찔리고 서풍이 불면 동쪽 가시에 찔리는 것이 삶이지만 사랑만 있으면 가시에 찔릴수록 삶에서 더 향내가 나게 된다. 인생의 가시는 사랑과 희망이란 치료약을 영혼에 흘러들어오게 하는 짧은 주사바늘이다.

 

이한규의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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