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립싱크가 아니다

 

2004년 봄, 프랑스에서 분리주의자들에 의해 많은 유대인 묘지들과 회당들이 파괴되었을 때, 당시 자크 시락 수상은 60년 전 5,000명의 유대인들을 구했던 르 챔본(Le Chambon)의 얘기를 상기시켜 사람들의 마음에 화해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유대인 대학살 때, 프랑스의 한 산골마을인 르 챔본은 유대인들에게 ‘무지개 마을’로 알려졌다. 프랑스 정부 부역자들이 나치에게 83,000명의 유대인을 넘길 때, 르 챔본 마을 주민들은 똘똘 뭉쳐 유대인들을 한 사람도 나치에게 넘기지 않았다. 결국 3천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5천여 명의 유대인들을 구했는데 그 일은 앙드레 트로크메(Andre Trocmé)란 한 개신교 목사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1941년 추운 겨울 밤, 누군가 트로크메 목사 집의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문밖에 추위에 떨고 있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나치로부터 도망쳐온 유대 피난민이었다. 그녀를 받아들이는 것을 시발점으로 마을 주민들은 유대인들을 위한 피난처를 제공했고, 식량카드를 주었고, 그들의 자녀를 교육시켰고, 수백 명을 인근의 스페인과 스위스로 지하 네트워크를 통해 안전하게 피신시켰다.

 

그 일을 알고 친 독일 프랑스 정부 관리들은 트로크메 목사에게 그 일을 그만두라고 했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하며 말했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들을 버릴 수 없습니다. 저는 유대인을 잘 모릅니다. 오직 사람을 알 뿐입니다.”

 

어느 날, 독일군인들이 트로크메 목사를 체포하러 왔다. 그때 아내인 마그다 트로크메(Magda Trocmé) 여사는 그 독일군들에게 정중하게 식사를 하자고 권했다. 나중에 친구들이 어떻게 남편을 체포하러 온 군인들에게 식사를 권했느냐고 나무라자 트로크메 여사는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저녁식사 시간에 배고픈 사람과 식사를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그녀는 누구도 받아들일 줄 아는 포용성과 용기가 있었다. 그때 유대인 구호에 누구보다 소중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마그다 여사를 비롯한 마을 여인들이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도와주면서도 마을 주민들 사이에 단 한 마디의 밀고나 자랑도 없었다. 그들은 목숨을 각오한 행동하는 사랑으로 유대 피난민들을 유대인이 아닌 인간으로 보고 말없이 그들이 설 땅이 되어주었다.

 

사랑과 행동은 떼어질 수 없다. 불행이란 ‘고아가 된 것’이 아니라 ‘고민만 하는 것’이다. 고민하면 행동이 생기지 않지만 행동하면 고민이 생기지 않는다. 행동하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고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행동할 수 있다. 사랑의 실체는 혀끝이 아닌 손끝에서 나타난다. “얼마나 많이 말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이 행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랑은 립싱크(lip sync)가 아니다.

 

- 이한규의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 중에서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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