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꿈이 있는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

남궁설민의 행복칼럼중에서

 

미국으로 이민간 옛 친구들을 이십년 만에 만나게 된 어느 중년 남자는 큰 기대와 설렘을 안고 갔는데 만나보니 몹시 실망스럽더라는 얘기를 했다. 그들이 한국을 떠날 당시의 언어를 그대로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도 그 때 당시로 고정되어 성장이 정지된 모습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옛날 꿈과 비전으로 충만했던 친구들은 거대한 벽과 같은 사회에 짓눌려 바위 속에 정지된 화석처럼 인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람이 멎어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들은 다들 세상적인 기준에서 볼 때는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벤츠나 BMW 같은 고급 승용차를 몰며 요트까지도 소유한 상류층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부유함과 편안함 속에서 만족하고 있는 그들에겐 꿈도 비전도 없었기에 서글픔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세상적인 조건, 물질적 조건이 충족되면 그것을 성공한 삶이라 생각하고 거기에 쉽게 안주해 버리곤 한다. 그저 그날 그날 편하고 즐겁게 사는 데만 몰두하는 것이다. 소위 머리 좋고 똑똑하다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부와 지위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그것들을 소유하게 되면 안락한 삶 속에서 안주하길 바라는 경향이 누구에게나 있다.


더 큰 부나 더 높은 지위를 꿈꾸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진정한 꿈이나 비전이란 그런 것과는 다르다. 지금도 미국 흑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존재하는 마틴 루터 킹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했었다. 그는 피부 색깔의 구분과 편견을 넘어서 흑백이 함께 사랑을 나누는 사회를 꿈꾼 사람이었고 총탄에 쓰러질 때까지 일생을 이 꿈을 위해 살아간 사람이었다.


킹처럼 거창한 꿈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어느 여성은 평범한 가정 주부지만 재소자들에게 늘 위로의 편지를 보내고 가끔씩 찾아가서 조촐한 음식 등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의 시야는 자기 남편, 자기 자식에게만 머물지 않고 어렵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되어 있었다. 이름도, 빛도 없이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분명 꿈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언젠가는 실현될 통일을 위해서 생활비의 적지 않은 부분을 떼 내어 통일 비용으로 저축하고 있다는 어느 여성의 얘기를 듣고 그녀가 목청만 돋우어 민족과 국민을 외치는 어느 남자보다도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역시 평범한 중년 여성이지만 그 꿈과 비전은 정말 원대해 보였다.


꿈과 비전이 있는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 자신이 해 야할 일이 있고 이루어야 할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중년 여성에게 잘 찾아오는 우울증도 이 꿈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좋은 대학 가는 것, 남편이 괜찮은 지위에 앉는 것, 넓은 집에 좋은 차 굴리는 것이 꿈인줄 생각하고 열심히 살았지만 그것들을 이루고 보니 그건 꿈이 아니라 욕구의 실현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허탈해지는 것이다. 진짜 꿈은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허탈해지거나 회의가 들지 않는다. 뿌듯한 기쁨 속에서 감격스러워질 뿐이다.


또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그 꿈을 위해 노력하고 살아가는 과정이 결과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꿈이 없는 사람은 부패하고 타락하기도 쉽다. 붙들어주는 목표가 없기 때문에 일시적인 쾌락이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꿈이 같아야 할 필요도 없고 또 성취되어야만 성공한 인생이 되는 것도 아니다. 꿈을 꾸는 것, 그리고 그 꿈 속에서 싱싱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으면 코를 높이기 전에 먼저 멋진 꿈을 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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