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사람들은 왜 눈앞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에 둔감한 걸까?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과 평화를 관장하던 신 야누스의 신전문이 열려 있으면 로마가 전쟁 중이라는 뜻이고, 문이 닫혀 있으면 로마 전역에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라는 뜻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긴 로마 시대를 통틀어 야누스 신전 문이 닫혀 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 해도 2년 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유럽에서 발발한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지난해 10월에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대치로 가자 지구가 다시 아비규환의 전쟁터가 됐다. 전쟁은 문명의 발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가장 야만적인 행위이다. 우리는 스스로 묻게 된다. 어쩌다 인류는 그런 재앙 같은 환경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걸까?

 

런던과 MIT의 신경과학과 교수인 탈리 샤롯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그의 칼럼에서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원리를 들여다보면, 핵심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극단적인 정치 운동이나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수준의 갈등은 보통 천천히 전개되고, 서서히 고조된다. 처음에는 작아 보이던 위협이 점차 커지면, 마지막에는 커다란 위협에도 별다른 감정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커다란 위협이 가해질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이렇게 위협과 문제가 천천히, 서서히 커지다 보면, 대낮에 눈앞에서 끔찍한 일이 버젓이 일어나도 그 사건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 뇌가 작동하는 중요한 생물학적 원리를 생각해 보면, 근본적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원리란 바로 습관화(habituation)다.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나 변하더라도 속도가 느린 것에 익숙해져서 점점 관심을 줄이고 덜 반응하게 되는 우리 뇌의 작동 원리이다. 카페에 처음 들어설 땐 실내를 가득 메운 커피향이 코끝을 찌르는 듯하지만, 반대로 20분 정도만 지나면 커피향이 전혀 나지 않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당신의 후각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그저 당신의 후각 뉴런이 어느덧 익숙해진 냄새에 반응하라는 신호를 더는 보내지 않아서 그렇다.

 

처음에는 에어컨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거슬리다가 어느 순간 들리지 않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당신의 뇌가 주변의 소음을 걸러주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뇌는 최근 들어 바뀐 것이나 새로운 자극에 먼저 반응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관심을 줘야 할 우선순위에서 계속해서 밀려난다.

 

습관화는 두 발로 서서 걸으며, 다른 동물보다 뇌가 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물학적 특징 중 하나다. 습관화가 만성이 되면, 인간은 주변의 부도덕한 행위에 덜 주목하고, 이를 고치려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며, 나아가 자기도 모르는 새 그 문제의 일부분이 되어버리고 만다.

 

샤롯 박사 연구실에서 진행한 실험에서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정직하지 않은 행위마저 습관화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는 대신 돈을 벌 기회를 주고, 뇌의 반응과 활동을 전부 기록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거짓말을 하는 자기 모습을 꽤 불편해하는 듯했다. 뇌 안에서도 감정을 표출하고 드러내는 곳에서 강력한 신호가 감지됐다. 그러나 거짓말을 거듭할수록, 감정적인 반응은 점점 줄어들었다. 스스로 거짓말하는 모습에 익숙해진 거다. 어느덧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거짓말을 스스로 억누르기는커녕 대수롭지 않게 거짓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러한 습관화를 깨려는 일련의 노력들도 계속되어 왔다. 예로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나 미국의 인권 운동, 미투운동 등 익숙해지기를 거부하고 불의와 거짓에 맞서 대응하는 운동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사회의 악과 치부, 문제에 익숙해지고 길들기를 거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문제를 발견하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에 익숙해지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나서자고 독려하는 이들이다.

 

유대 신학자이자 랍비인 에이브러험 조슈아 헤셸은 “우리는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대신 무언가에 깜짝 놀라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부정부패나 전쟁이나 마약 중독, 동물 학대, 총기 폭력 등 온갖 문제에 깜짝 놀라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사람들이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것은 문제가 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볼 때 우리는 어느덧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가운데 별로 좋다고 하기 어려운, 우리 삶의 끔찍한 특징들을 가려내고, 거기에 놀라고 대응해야 한다.

 

샤롯의 칼럼 중 나치 치하의 한 독일군이 인터뷰를 통해 “매일, 매번 아주 조금씩 나빠지는 걸 방관하고 묵인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말은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대로 해보면 어떨까? 누구나 너무 익숙해지는 것을 거부하고, 잘못된 것을 보면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면... 그 문제, 부조리라는 것이 꼭 거악일 필요는 없다. 아주 조금씩 좋아지고 무언가 나아질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으며 나쁜 걸음이 쌓여 재앙이 되듯, 반대로 좋은 걸음과 개선이 거듭 쌓이면 희망을 떠받치는 단단한 토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용 Why People Fail to Notice Horrors Around Them, By Tali Shar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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