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17~2023년 발생한 구급대원 폭행 사건은 총 1064건이다. 이 중 약 70%는 주취 상태의 가해자에 의해 발생했으며 나머지는 정신질환, 보호자의 감정 격화, 기타 폭력적 성향에 의해 촉발됐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폭행이 소위 ‘직무 리스크’로 묵인되는 사회적 분위기다. ‘응급상황이니 이해하자’, ‘술에 취했으니 봐줘야지’라는 인식은 공권력에 대한 침해일 뿐 아니라 다음 생명을 위협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12조는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폭행ㆍ협박을 엄격히 금지하고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19구조ㆍ구급에 관한 법률’ 제30조 역시 유사한 보호 조항을 담고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선처, 기소유예, 사회봉사 명령으로 끝나는 사례가 대부분이며 “환자의 상태가 불안정했다”는 이유로 정상 참작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특히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는 구조 속에서 피해자인 구급대원은 ‘합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약자의 입장에 놓인다.
공무를 수행하는 구급대원이 폭행을 당하면 당장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처할 인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 이후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면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응급환자에게도 피해가 간다.
현재 소방청과 각 소방본부는 신문이나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구급대원 폭행 금지와 예방을 홍보 중이다. 소방서는 119구급차량 내 CCTV 설치나 폭행 장면 채증을 위한 웨어러블캠 지급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구급대원 폭행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선 사회적 인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아무리 구급대원 폭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구급대원 보호를 위한 장비 사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도 ‘구급대원을 폭행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지 않는 한 폭언ㆍ폭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구급대원에게 폭행을 가하는 건 대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다. 폭언과 폭력 대신 격려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구급대원이 안전하고 신속한 구급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