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삶

소설가 조경란의 글에서

 

만약 당신이 내게 전화를 걸어 “오늘 저녁이나 같이 합시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내가 “미안하지만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요”라고 대답한다면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상대방은 대개 ‘아, 저 사람이 오늘 시간이 없는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시간이 없다’라는 말은 이제 문화적으로 깊이 묵인된 느낌이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하고 저녁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다른 일이 있습니다”라고 솔직히 말하지 않고 시간이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루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그것은 결국 시간에 관한 두 가지 착각들 중 ‘어쨌거나 시간을 저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는 많은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시간 계획을 짜고 생활개선에 이용했던 ‘시간관리 수첩’의 현대판 격인 ‘프랭클린 데이 플래너’를 만든 미국의 컨설팅전문가 하이럼 스미스가 말한 ‘시간에 관한 첫 번째 착각’은 ‘우리가 지금보다는 미래의 어느 때에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내 경우엔 그 정도가 좀 심한 편이었다.


밤낮을 거꾸로 사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어느 틈엔가 나는 하루, 즉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주어졌을 24시간을 내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산다는 느낌에 휩싸였다. 도서관에 갔다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는가 싶었는데 벌써 폐관시간이라는 사인이 울릴 때는 눈앞에서 뭉텅뭉텅 시간을 도둑맞아 버리는 느낌이었다. 소설가로 등단한 지 8년이 되었고 그동안 여섯 권도 넘는 책을 써 왔으니 게으르게 살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굳은 결심으로 여섯 가지 계획을 세웠다.


계획을 세울 때는 내 무기력한 태도, 우유부단함, 실천력 부족, 불분명한 목표 등을 고려한 상태에서 지킬 수 있는 것, 집중할 수 있는 범위를 분명히 했다. 내 계획 중에는 ‘낮잠을 줄일 것’ 같은, 남부끄럽지만 나로서는 꽤 절박한 사항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곧장 행동에 돌입했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 백수인 윌이라는 남자는 하루의 단위를 각 30분으로 구성해 산다. 이를테면 목욕은 한 단위(그러니까 30분), 텔레비전 시청은 네 단위, 인터넷 서핑, 운동… 그러면 하루가 다 간다. 


그러나 나는 영화 속의 윌처럼 백수도 아니고,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나에게는 뭔가 할 일이 필요했고, 나는 그것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어디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 같다.


날마다 해야 할 일을 세우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도록 노력하고는 있지만 어쩐지 나는 요즘 자꾸만 무력해지고 우울해지기까지 하는 것을 느낀다. 대체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렇다고 나는 솔직히 말해 쿤데라식의 ‘느림’이나 러셀의 ‘게으름’을 찬양하는 쪽은 아닌데도 말이다.


어느 날 토끼 한 마리가 앞만 쳐다본 채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보고는 “왜 그렇게 급하게 가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내 일을 쫓아가고 있단다”라고 대답했다. 토끼는 “당신이 일을 쫓아가야 할 정도로 일이 당신을 앞서서 달리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죠? 일이 당신 등뒤에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면 그냥 멈추기만 하면 만나게 될 텐데. 지금 당신은 어쩌면 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셈인지도 몰라요”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속도로부터도 자유롭고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운 삶은 어떻게 살 수 있는지가 너무나 궁금하다. 하루 중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을 늘림으로써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시간의 풍요일까. 


그것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은 아닐까. 아무려나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새에 아이고, 벌써 3월 첫 주도 다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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