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행정통합 특별법이 중앙정부의 제동에 걸리자 지역 정치권이 일제히 “부처 이기주의”를 성토하고 있다. 통합이 잘되면 자신의 공으로, 틀어지면 남 탓으로 돌리는 익숙한 정치 행태가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뿌리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충분한 준비와 설계 없이 속도전만 앞세운 광주·전남 지도부와 정치권에 있다.
이번 통합 특별법안에 대해 정부 부처는 400개에 가까운 조항 중 119개에 “수용 불가” 의견을 냈다. 인공지능·에너지 등 핵심 첨단산업에 대한 권한 이양과 재정 특례가 집중적으로 반대에 부딪혔고, 타 시·도와의 형평성과 국가 재정운용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통합을 추진하는 측은 “광주·전남의 미래가 걸린 특례”라고 주장하지만, 법적·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세밀한 설계 대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정치적 수사와 일정 맞추기에 매달려온 것이 현실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절차와 공론화의 빈약함이다. 광주시·전남도 공무원 설문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도청 공무원, 80%에 이르는 시청 공무원들이 통합을 ‘졸속·성급하다’고 본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지도부는 “우려”를 넘어선 현장 반대 목소리를 사실상 외면했다. 주민과 공직사회, 전문가의 충분한 논의와 영향 분석 없이 상향식 숙의 과정이 생략된 채, 이미 결론을 정해 놓고 통보하는 ‘탑다운 통합’이 진행되고 있다는 시민단체의 지적도 가볍지 않다.
행정 효율과 미래 비전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당사자들의 동의와 신뢰를 확보하는 가장 기본적인 민주적 절차는 소홀히 한 것이다. 행정통합은 단순히 광역단체의 경계를 합치는 기술적 조정이 아니다. 수백만 시·도민의 삶의 방식, 지역 정체성, 정치·행정 권력 구조를 다시 짜는 구조 개편 작업이다. 그럼에도 명칭·청사 위치, 의회 구성, 기초지자체 존립과 권한, 재정 배분 등 갈등이 불가피한 핵심 쟁점에 관한 사전 합의와 설계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승진 적체·원거리 발령·청사 위상 하락에 대한 우려가, 시민사회에서는 ‘전남 지워지는 통합’ ‘광주로의 행정 몰아주기’라는 경고가 잇따르는데도, 정치권은 이를 정면으로 해소하기보다 ‘시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그 결과가 지금의 ‘맹탕 특별법’ 위기다. 내용은 부실한데 일정만 가파른 법안을 밀어붙이다 중앙정부의 반대에 부딪히자, 책임의 화살을 모두 외부로 돌리는 구도가 완성됐다. 그러나 통합의 명분을 스스로 약화시킨 것은 졸속 로드맵을 짜고도 공론화와 설득에 실패한 지역 정치권이다.
통합이 진정으로 필요하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정부 탓’ 공방이 아니라, 6월 지방선거 일정에 맞춘 속도전을 내려놓고, 장기 로드맵과 민주적 숙의 구조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주민투표를 포함한 직접 민주주의 방식, 독립적 공론화 기구, 실질적인 영향 분석과 이해 당사자 설득이 빠진 통합은 어느 날 다시 ‘남 탓’을 남기고 좌초할 수밖에 없다.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가 다시 시작될지, 여기서 멈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위기를 “중앙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만 규정하는 순간, 지역 정치의 자기성찰과 혁신의 기회는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잘되면 내 덕, 안되면 남 탓이라는 구태를 끊지 못한다면, 어떤 이름의 통합도 광주 전남의 미래를 담보하지 못할 것이다.













